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Sep 10. 2015

베르나도트 : 프랑스에서의 삶

번외편(1): 베르나도트는 어떻게 국민의 대표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나

공포정치기 프랑스 군인들이 제일 껄끄러워하던 상대는 적이 아니라 바로 내부에 있었다. 일명 "국민의 대표자"라고 불리던 이들은 공포정치기 혁명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군이나 다른 공공기관에 배치되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혁명을 전파하는 것은 물론 혁명에 반대하는 인물들을 색출하는 임무도 맡았었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생쥐스트 일 것이다.


사실 많은 군인들이 "민간인"이었던 이들이 군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승리만을 원했으며 후퇴하는 것에 대해 매우 강하게 비난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의 보고서 한 장이면 군인들은 바로 파리로 소환되어서 길로틴형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한 장교는 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말의 자비심도 없는 그 공포의 대표자 앞에서 모두가 머리를 숙였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군인들의 계급을 뺏았으며 군주의 힘이 재현된듯했다."


프랑스 혁명 전쟁 초기 군대는 매우 무질서했다. 병사들의 대부분은 자원병 아니면 징집병이었으며 훈련 등을 받지 못한 민간인이나 다름없었기에 이들은 병사가 아닌 일반 군중과 같았다. 이 때문에 전투 중의 조그마한 상황도 매우 돌발적 변수로 작용했다. 이들은 열정이 너무 넘치거나 너무 겁이 많았기에 전투 중 명령을 자주 무시했다. 또 가끔 지휘관의 말을 거부한 채 폭동을 일으켜서 적이 아닌 자신의 지휘관을 공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1794년 4월의 어느 날, 베르나도트의 부대에 배속된 국민의 대표자는 베르나도트를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베르나도트가 국민의 대표자에게 비판적인 것을 알았으며 이런 이들을 빨리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이들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파리로 보고서를 보냈고 곧 베르나도트를 체포하라는 명령서가 내려왔다. 하지만 전투가 진행되었기에 잠시 체포를 미루게 된다.


전투가 시작되었고 전투 중 베르나도트의 부대는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사단이 퇴각하는 것을 돕고 있던 중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군이 폭동을 일으킨 병사의 총에 맞아서 사망한 것이었다. 나머지 병사들은 폭동을 일으킨 병사들에 심적으로 동조하고 있었기에 사단 전체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장군이 없었기에 최고 지휘관이 된 베르나도트는 병사들의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이런 무질서 한 상황이 얼마나 위협적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이것이 적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프랑스에는 얼마나 치욕적인 일이 될 것인지 이야기했다. 병사들은 베르나도트의 연설에 마음을 가라앉혔으며 장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병사들을 체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당시 많은 병사가 그랬듯이 훈련받지 않았기에 전투가 시작되자 병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베르나도트는 병사들을 모으는데 소질이 있었고 그의 연설은 늘 잘 먹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병사들이 그의 연설을 듣지 않았고 달아나기 바빴다. 이런 상황이 되자 베르나도트는 자신의 견장을 어깨서 뜯어내 내동댕이 치면서 이렇게 외쳤다. "만약 여러분이 전투에서 불명예스럽게 행동한다면, 나는 그대들의 대령이길 거부하겠소"

베르나도트 주변의 병사들은 이 소리를 듣고 그의 견장을 줏어서 다시 베르나도트에게 돌려줬으며 곧 상황은 진정되었다.


이 일련의 전투 이후 국민의 대표자는 마음을 바꾸게 된다. 그는 베르나도트가 보여준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베르나도트에 대한 체포 명령은 취소되다. 이렇게 베르나도트는 죽음의 위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베르나도트 1792년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

매거진의 이전글 베르나도트 : 프랑스에서의 삶(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