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합스부르크 가문은 티롤을 어떻게 손에 넣었나?
티롤 지방은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지방이었다. 특히 중세에 티롤지방은 매우 중요했는데 황제가 교황을 만나 대관하러 가려면 이 티롤지방을 지나가야했기에 티롤 지방의 영주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티롤 지방은 결국 최후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얻게 된다.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티롤의 상속녀였던 마르가레테는 어린시절 강력했던 룩셈부르크 가문의 요한 하인리히와 결혼했다. 요한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보헤미아의 국왕이 되는 요한이었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의 황제 하인리히 7세였고 형은 후에 황제 카를 4세가 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신하들은 그녀의 남편이 티롤 지방을 통치하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했다. 특히 마르가레테는 중세시대 남편이 아내의 상속 영지를 마음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불만스러워했으며 자신의 영지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쫓아내버리기까지 했다.
첫번째 남편을 쫓아낸후, 마르가레테는 서둘러 두번째 남편을 구하게 된다. 비록 쫓아낸 남편의 집안이 좀 흔들리긴 했지만 강력한 가문이었기에 그녀를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황제 가문의 사람을 두번째 남편으로 선택한다. 첫번째 남편의 가문인 룩셈부르크 가문과 경쟁을 하던 비텔스바흐 가문의 황제인 루드비히 4세의 아들인 바이에른의 공작 루드비히 5세였다.
남편을 쫓아내고 두번째 남편을 얻은 마르가레테는 엄청나게 압력에 시달렸는데 이를테면 교황은 둘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파문했으며 티롤지방의 성무까지 금지해버렸다. 당시 흑사병이 돌던 시기였기에 이시기 성무까지 금지되자 나라는 완전 혼란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결국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남편의었기에 어쨌든 정치적으로 잘 해결되어서 편안하게 살수 있는 것같아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편인 루드비히 5세가 일찍 죽고 외동아들인 마인하르트 마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발생한다.
루드비히가 죽고 마인하르트마저 죽자 마인하르트가 물려받은 상속 영지에 대한 처리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루드비히의 동생들인 바이에른의 공작들은 조카가 죽은뒤 조카의 상속재산을 자신들이 나눠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비텔스바흐 가문의 영지를 그들이 나눠갖는것은 당연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공작들은 단순히 형인 루드비히 5세가 물려준 영지 뿐만 아니라 마인하르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야하는 티롤 지방마저 자신들이 물려받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어쩌면 중세에는 이 주장이 먹혀들어갈수도 있었다. 실제로 반대의 경우가 발생했을때도 후손없는 아내가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은 경우 그 영지등을 친정식구나 아내의 두번째 남편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르가레테가 그리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려던 첫번재 남편을 쫓아내기까지 했던 여성이었기에 시집 식구들이 자신의 상속 영지를 대놓고 노리자 매우 분노했다. 그녀는 대놓고 욕심을 내는 시동생들에게 자신의 영지를 뺏길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이에른 공작들은 무력으로라도 그녀의 상속 영지인 티롤 지방을 뺏으려했다. 이렇게 되자 마르가레테는 차라리 욕심많은 시동생들에게 티롤을 넘기느니 사돈 집안이자 비텔스바흐 가문과 경쟁 관계에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에 티롤 지방을 넘겨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아들인 마인하르트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여성과 결혼했었고, 이에 마르가레테는 며느리의 오빠인 오스트리아의 공작 루돌프 4세에게 티롤 지방을 넘겨버리게 된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넘겨받은 티롤 지방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그리고 이후 티롤 지방은 쭈욱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 영지가 된다.
역시 결혼으로 성공한 가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