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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r 11. 2019

후훗 소드 마스터쯤이야...

가벼운 역사 이야기 : 열받은 참모장이 사령관에게 대드는 방법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 프랑스의 주요 군대중 하나는 "상브르와 뫼즈 군"이었다. 이 군대는 플뢰뤼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그 전투를 치뤘던 부대들을 주축으로 해서 생긴 부대였다. 이 부대는 프랑스 혁명전쟁 초기 매우 뛰어난 공을 세운 부대이기도 했다. 이 부대는 당대 사람들에게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군"(이탈리아 방면이 머무르던 프랑스 군) 만큼이나 명성이 알려진 부대였었다. (실제로 이 부대 출신의 장군들은 이후 프랑스 전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다.) 이 부대의 총 사령관은 플뢰뤼스 전투의 승장이었던 주르당이었으며 부사령관은  "전장에 현신한 마르스의 화신"이었던 클레베르였다. 그리고 샹피오네,마르소 등등 같은 뛰어난 장군 역시 장군으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할 주인공 역시 이 부대의 장군이기도 했다.


플뢰뤼스 전투에서의 프랑스 장군들 왼쪽에 승리포즈가 주르당이고 그 오른쪽 세명이 마르소,클레베르,샹피오네입니다. 왼쪽의 삼색깃발이 달인 모자를 쓴 인물은 생쥐스트입니다.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는 클레베르 휘하에서 플뢰뤼스 전투를 치뤘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서 상브르와 뫼즈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장군이 된다. 그리고 그에게는 같은 "가스코뉴"지방 출신이었던 사라쟁이라는 인물이 참모장으로 있었다. 사라쟁은 원래 클레베르의 참모장이었다가 베르나도트가 장군이 되면서 그의 참모장이 된 인물이었다. 사라쟁은 베르나도트보다 먼저 장군이 된 인물이었지만 최전선에서 싸우는 야전형 군인이었던 베르나도트가 결국 부대의 일무를 맡게 된것이었고 사라쟁은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것이었다. 훗날 베르나토트 휘하에 있었을 때의 회고록을 썼던 이 장군은 기본적으로 동향이었던 베르나토트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프랑스 혁명 전쟁 시절


하지만 "성격급하다"라고 알려진 두명의 가스코뉴 사람들이 만났으니 둘 사이에 마찰이 없을수가 없었고 사라쟁과 베르나토트는 심각한 마찰을 빚게 된다.


그 날도 독일 전선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베르나도트는 사라쟁이 점령지 사람들에게서 "선물"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우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고 있던 베르나도트는 이런 선물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으며 결국 자신의 참모장인 사라쟁 장군에게 대놓고 질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라쟁은 이 "선물"에 대해서 베르나도트와 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요구한것이 아니고 점령지 사람들이 호의로 보내온것을 거절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약탈이 아니었기에 사령관에게 질책받을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공개적 질책에 기분이 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가스코뉴"출신답게 사령관에게 대놓고 누가 옳은지 결투로 해결하자고 이야기한다. 당대 결투는 분쟁을 해결하던 흔한 방식중 하나였는데 비록 프랑스 군에서 결투에 대해서 금지하는 방향이긴 했지만 두사람의 계급이 같고 둘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문제를 결투로 해결하는 것 역시 일반적이기도 했다.


사라쟁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이때문에 결투 역시 정당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특별히 자신의 정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베르나도트와의 결투를 총이 아닌 칼로 하자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그에게 매우 불리한 것이었는데 베르나도트는 프랑스 왕립군 시절 연대 "소드 마스터(검술사범)"이었기 때문이었다.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혁명전쟁 초기 장교 시절


이 문제는 결국 베르나도트가 강경하게 나오는 사라쟁 장군에게 사과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더하기

같은 계급이니까 저렇게 사과하지 같은 계급이 아니라면 영창으로 보내버렸을 것이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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