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클리블랜드 스트리트 스캔들
1889년 7월의 어느날, 영국의 루크 행크스 라는 이름의 경찰관은 당시 일어났던 전보국의 강도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15살의 전보 배달 소년이었던 찰스 토마스 스윈스코라는 소년이 14실링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전보 배달 소년들은 공금과 개인돈이 헷갈릴 것을 우려해서 개인적 현금을 가지고 다닐수 없었다. 그런데 스윈스코의 돈은 개인 돈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히 그 소년이 강도 사건과 연결되었으리라 추측한 경찰을 그를 심문했다. 그리고 이 심문은 전혀 다른 사건의 발단이 된다.
스윈스코는 이 돈은 강도 사건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클리블렌드 스트리트 19번지에서 남성과 매춘행위를 하고 받은 돈이라고 자백하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연애는 법적으로 금지된 상황이었으며 당연히 중죄에 해당했기에 경찰은 수사에 들어가서 클리블랜드 스트리트 19번지의 고객들을 밝혀내게 된다.
가명으로 다녔던 고객들 중에는 아서 서머셋 경과 유스턴 백작 헨리 제임스 피츠로이가 있었다. 유스턴 백작 헨리 제임스 피츠로이는 7대 크래프튼 공작의 장남으로 그는 찰스 2세와 그의 정부였던 바바라 빌리어스의 우손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서 서머셋경은 더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8대 보퍼트 공작의 아들로 보퍼트 공작 가문은 거슬러 올라가면 플랜태저넛 왕가의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인 보퍼트 가문의 후손이기도 했다. 이렇게 높은 가문의 출신이었을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아서 서머셋 경이 당시 웨일스 공의 핵심 측근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이들이 연루된것이 알려졌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던 아서 서머셋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도망다녔다. 경찰은 그의 할머니인 보퍼트 공작부인의 장례식때 그를 체포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는 다시 한번 경찰을 피해 달아났으며 영국을 떠났고 평생 프랑스등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에서 서머셋이 도망갈수 있었던 것은 웨일스 공의 비호때문이었다. 웨일스 공은 물론 자신의 측근이 잘못을 저지른데 화를 냈지만 경찰 수뇌부는 서머셋이 떠날수 있도록 묵인했으며 웨일스 공 역시 이런 일처리에 흡족해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사건에서 왜 웨일스공이 관여하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한 협박편지 하나가 주요했다고 한다. 경찰서에서는 이 사건을 덮지 않으면 PAV마저도 연루될것이라는 이야기가 적힌 협박편지가 왔다고 한다. 그리고 고위층이 연관된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압박을 받고 있던 경찰들은 PAV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바로 빅토리아 여왕의 장손이며 웨일스 공의 장남으로 영국 왕위계승 서열 2위로 가족들에게는 "에디"라는 애칭으로 불린 프린스 앨버트 빅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웨일스 공의 행동이나 왕실에서의 행동 역시 이런 의심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기도 했다. 웨일스공은 서머셋을 빼돌렸고, 왕실에서는 에디를 인도 순방 보내버렸던 것이다.
이후 사건은 적당히 대충 피라미들만 잡혀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버릴뻔 했지만 저널리스트인 어네스트 파크라는 인물의 노력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고위층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 대중들은 매우 비판적이 되었다.
사실 이 사건에서 웨일스 공의 역할이 컸다. 웨일스 공의 압력은 이 사건을 경찰이 대충 덮도록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웨일스 공이 나선 이유는 측근과 심지어 아들마저 연루되었을지 모르는 스캔들을 덮기 위한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더 사건을 파고 들면 복잡한 정치 상황이 연결되어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인 웨일스 공은 오래전부터 프리메이슨 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통해서 세상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인물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장남인 에디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어린시절부터 배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녔으며 대학에서 온갖 사람들을 만났던 그는 아버지의 실제 권력을 알아채고는 그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웨일스공과는 별개로 프리메이슨쪽에서는 에디에게 경고를 하고 싶어했으며 자신들에게 반대를 어떻게 되나를 보여주려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클리블렌드 스트리스 스캔들이었다. 이들은 경찰에 에디가 연결되어있다는 암시를 주는 제보까지 했었다.
그리고 비록 조직을 이해했지만 아버지로써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웨일스 공은 이문제를 중재하러 나섰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을 덮었으며 아들에게도 교훈을 주기 위해 인도 순방을 보내버렸던 것이다.
더하기
...이 인도 순방에서 돌아온 에디는 사랑했고 결혼하고 싶어했던 헤센의 알릭스가 러시아 황태자와 약혼해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음하하하하.....
올해도 어김없이 4월 1일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나름 고민하다가 글을 올립니다. 프리메이슨을 어떻게 연결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 사건이 떠올라서 연결해봅니다. 실제로 클리블랜드 스트리트 스캔들은 대중에게 에디의 나쁜 이미지를 각인 시킨 스캔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려고 어제 나름 밑밥까지 깔았는데 말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