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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pr 08. 2019

뒷끝 많은 전 여친을 둔 남자의 실수

가벼운 역사 이야기 : 루이 14세와 올림피아 만치니 그리고 오이겐

루이 14세는 수많은 여자들과의 연애 관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궁정에서 그와 가벼운 연애관계였다는 여성들만 해도 산더미였다. 물론 가장 유명한 여성들은 정식 정부였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나 마담 드 몽테스팡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말하려는 뒤끝 많은 여친 역시 나름 유명한 여성이었다.


루이 14세, 1661년



루이 14세 치세 초기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은 바로 마자랭 추기경이었다. 그는 섭정 모후였던 안 왕비를 보좌해서 지지했으며 루이 14세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이때문에 안 도트리슈나 루이 14세 모두 마자랭에게 호의적이었으며 이런 호의는 마자랭의 조카들에게로도 이어지게 된다. 마자랭은 이탈리아에 있던 두 누이들에게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와달라고 했고 두 누이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와서 정착했다. 안 왕비는 이런 마자랭의 조카들을 매우 우대했는데 마자랭의 조카딸들을 궁정에서 공작의 딸처럼 대우했으며 이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기도 했다.


마자랭 추기경



이 마자랭의 조카들중 제일 유명한 인물은 바로 루이 14세의 첫사랑으로 알려진 마리 만치니일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사람은 마리 만치니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인 올림피아 만치니이다. 올림피아와 마리는 루이 14세와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와 비슷한 또래였고 이때문에 이들은 궁정에서 함께 자랐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루이 14세가 이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 재치있고 영리했던 마자랭의 조카들에게 눈을 돌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루이 14세가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인물은 바로 올림피아였다. 하지만 루이 14세가 무슨 사고를 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던 안 왕비와 마자랭은 얼른 올림피아를 시집보내버린다.



만치니 자매들, 왼쪽에서 올림피아, 오르탕스, 마리


급하게 시집가긴했지만 올림피아가 시집간 집안은 보통 가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은 수아송 백작이었던 외젠 모리스 드 사부아였다. 그는 사보이 공작의 손자로 그의 할머니는 펠리페 2세의 딸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인 마리 드 부르봉은 콩데 공의 손녀로 수아송 백작령의 상속녀였고 이때문에 외젠 모리스 드 사부아는 프랑스 왕실 가족의 방계 가족과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수아송 백작 외젠 모리스 드 사부아, 무슈 르 콤트


올림피아는 떠벌리기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며 사실 그녀와 루이 14세의 썸이 알려진것도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해서 알려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이때문에 올림피아의 첫째 아이인 루이 토마스가 루이 14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궁정에서 파다했다고 한다.(하지만 루이 14세의 성격이나 행동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올림피아는 동생인 마리 만치니가 루이 14세와 가까운 사이가 된 것에 매우 질투했다고도 알려져있다.


올림피아 만치니, 수아송 백작부인 올랭피아, 마담 라 콤테스


이후 올림피아는 궁정에서 왕비 마리 테레즈의 시녀장으로 일했으며 이것은 그녀가 궁정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가진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저런 사소한 음모들에 관여하고 살았는데 이를테면 루이 14세와 "마담"이 애매한 사이가 되자, 스캔들을 막기 위해 국왕이 마담의 시녀중 한명인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에게 관심을 갖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루이 14세가 진짜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자 열받은 올림피아는 왕비에게 이 사실을 밝혀버렸다. 물론 이 사건은 도리어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가 루이 14세의 정식 정부가 되는 사건으로 바뀌게 되지만 말이다.


오를레앙 공작 부인 앙리에트 안, "마담", 잉글랜드의 헨리에타 앤



이렇게 살던 어느날, 루이 14세는 물론 전 프랑스가 경악하게 될 사건 하나가 일어나게 된다. 일명 "독살사건"이라는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는 이 사건은 처음에는 한 귀부인이 상속을 위해서 가족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그후 독약을 제공한 사람들이 엄청난 이름을 대면서 모두가 경악하는 사건으로 바뀌게 된다. 맨 마지막에 나온 사람은 무려 루이 14세의 오랜 정부로 궁정에서 왕비보다 더 권력을 누렸었던 마담 드 몽테스팡이었다.하지만 이전에 이름이 나온 사림이 있었으니 바로 올림피아였다. 루이 14세는 올림피아가 루이 14세가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거나 아니면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는 부분에서 경악을 했다.


어쨌든 올림피아는 때마침 사건이 알려지기 직전에 죽은 남편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물론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미 루이 14세의 마음은 돌아섰고 올림피아는 브뤼셀로 망명해야했고 평생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올림피아 만치니, 수아송 백작부인 올랭피아


이 사건은 이렇게 끝나는줄 알았지만......


시간은 흘러 올림피아가 여전히 브뤼셀에 있던 1683년 2월의 어느날, 루이 14세의 궁정에 한 사람이 청원서를 올리게 된다. 그의 이름은 외젠 드 사부아로 바로 올림피아의 아들이었다. 그는 원래 성직자가 되기로 했었지만 그의 혈통에 흐르는 군인의 피가 그를 자극했다. 19살의 외젠은 국왕 루이 14세에게 프랑스 군으로 복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저리 같은 전 여친을 절대 잊지 않았으며, 한번 등돌린 사람에게 절대 용서가 없었던 루이 14세는 전 여친의 아들이 나타나자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가 궁정에 있는 것만으로도 올림피아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려고 음모를 꾸밀수 있다고 여겼을수도 있다.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형편없는 외모의 외젠이 못마땅했을수도 있다.


어쨌든 루이 14세는 외젠을 단호하게 거절했으며, 프랑스에서 군인으로 성공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외젠은 다른 길을 찾게 된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에서 형이 전사한 직후 외젠은 형이 있던 제국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그래도 프랑스에 엄청나게 반감을 품고 있던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외젠을 매우 적극적으로 환영했고 이것은 바로 오스트리아의 명장 오이겐 폰 사보이엔의 시작이다.


외젠 드 사부아, 오이겐 폰 사보이엔


...오늘의 결론은 여친(또는 남친)을 잘사귀자?!!!

루이 14세용 한정판 결론은 전여친의 아들은 전 여친이 아니다 ?!!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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