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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pr 15. 2019

사람일은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가벼운 역사 이야기 : 오를레앙 공작 부인 루이즈 앙리에트 드 부르봉

이 이야기는 앞쪽의 "그럼 애는 누가 돌보냐고?!https://brunch.co.kr/@elara1020/495"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앞에서 이야기한 콩티 공 부부는 화해했고 그 뒤에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둘의 막내딸인 루이즈 앙리에트 드 부르봉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루이즈 앙리에트 드 부르봉, 오를레앙 공작부인


루이즈 앙리에트 드 부르봉은 17살에 결혼 상대가 정해집니다. 바로 오를레앙 공작의 후계자였던 샤르트르 공작 루이 필리프였습니다. 이 결혼은 루이즈 앙리에트의 어머니인 콩티 공비였던 루이즈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과 샤르트르 공작의 할머니였던 오를레앙 공작 부인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의 결정이었습니다.


루이즈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 루이즈 앙리에트의 어머니


루이즈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의 어머니인 루이즈 프랑수아즈 드 부르봉과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은 사실 자매지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친자매지간이죠. 둘은 바로 루이 14세와 그의 오랜 정부였던 마담 드 몽테스팡의 딸들이었던 것입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사생아 자녀들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왕가의 방계가문 사람들과 정략결혼 시켰었습니다.  그래서 마담 드 몽테스팡의 두딸들 역시 왕가의 방계가문으로 시집갔었죠.


루이즈 프랑수아즈 드 부르봉, 콩데공비, 루이 14세와 마담 드 몽테스팡의 딸


하지만 루이즈 프랑수아즈 드 부르봉과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은 친자매지간이었지만 서로 경쟁심리가 심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승부역이 강했던 어머니 마담 드 몽테스팡의 성격을 물려받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언니인 루이즈 프랑수아즈가 왕가의 제1분가였던 콩데 가문으로 시집갔을때 매우 자랑스러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생인 프랑수아즈 마리는 국왕의 조카였던 오를레앙 공작의 아들과 결혼했기에 더 높은 지위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게다가 루이 14세는 이 결혼에 대놓고 반발하는 오를레앙 공작 부부를 달래기 위해서 엄청난 지참금을 줬기에 자매들의 관계는 더 나빠졌었다고 합니다.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 오를레앙 공작부인, 루이 14세와 마담 드 몽테스팡의 딸


이런 관계는 후대에까지도 이어지게 되는데,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딸이었던 루이즈 엘리자베트는 자신의 아들 딸들과 이모의 후손들을 결혼시켜서 두 가문의 불화를 종식시키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731년에는 먼저 오를레앙 공작의 딸과 루이즈 앙리에트의 오빠가 결혼했었습니다.  시아버지가 될 오를레앙 공작 역시 이 결혼에 호의적이었는데 아마도 이미 한번 결혼으로 연결되었던 것과 더불어 루이즈 앙리에트는 문란한 프랑스 궁정에서 떨어져 수녀원에서 교육받으면서 성장해서였습니다. 오를레앙 공작은 루이즈 앙리에트가 종교적 교육을 매우 깊이 받아서 프랑스 궁정의 다른 많은 여성들과 달리 매우 정숙한 아내가 될것이라고 기대했었다고 합니다.


루이 도를레앙, 오를레앙 공작, 루이즈 앙리에트의 시아버지


결국 공티 공의 딸이었던 루이즈 앙리에트 드 부르봉은 1743년 12월 17살의 나이로 19살의 샤르트르 공작 루이 필리프와 결혼합니다.


루이 필리프 도를레앙, 루이즈 앙리에트의 남편, 1770년대


하지만 이 결혼은 곧 스캔들이 가득한 결혼으로 발전합니다. 신혼 몇달이 끝난뒤 부부는 프랑스 궁정에 익숙해졌으며 대놓고 서로 연애질을 시작하게 됩니다. 젊은 샤르트르 공작부인의 연애질은 궁정에서 너무나 유명해졌으며, 루이즈 앙리에트가 낳은 아이들이 남편인 샤르트르 공작의 아이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게 됩니다.


결국 이 상황은 며느리가 수녀원에서 자라나서 매우 정숙한 여성이라고 기대햇엇던 시아버지 오를레앙 공작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된것이었죠. 그리고 이에 열받은 오를레앙 공작은 며느리가 낳은 손자 손녀들을 자신의 친손자손녀들로 인정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루이즈 앙리에트의 아이들, 가운데는 그냥 천사인데 아마도 일찍 죽은 첫째딸을 의미할수도 있을듯합니다.


오늘의 결론은 사람일은 함부로 단정하지 말자!!


더하기

루이즈 앙리에트와 오를레앙 공작이 되는 루이 필리프 1세의 아들인 루이 필리프는 혁명중 "필리프 에갈리테"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혁명중 대놓고 어머니의 부정을 강조하게 된대나 어쩐대나......

루이 필리프 도를레앙, 루이즈 앙리에트의 아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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