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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y 08. 2019

벨라스케스가 그린 사람들 (10)

벨라케스의 초상화 :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 (1578-1621)

에스파냐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3세는 펠리페 2세와 그의 네번째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안나의 아들이었습니다. 펠리페 2세는 네번 결혼했었는데 첫번째 결혼으로 태어났던 후계자 돈 카를로스가 사망한뒤 오래도록 후계자가 될 아들을 열망했었습니다. 세번째 결혼때 두 딸만이 태어나서 무척이나 실망했다고 합니다만 딸들에게 좋은 아버지였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여동생의 딸인 오스트리아의 안나와의 결혼으로 아들을 얻습니다만 네번째 아내마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펠리페 3세는 펠리페 2세의 유일한 남성후계자였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합친 이베리아 반도 전체와 신대륙 그리고 네덜란드 지방까지 물려받는 인물이었기에 그는 에스파냐 역사상 가장 큰 영지를 통치했었던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독립을 원했기에 전쟁을 해야했으며 또 30년 전쟁에 개입하는 등 대외적으로 전쟁을 치뤄야했습니다. 또 대내적으로는 여러 실책을 범해서 에스파냐 경제에 타격을 주기도 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펠리페 3세의 아들인 펠리페 4세는 왕실 가족들의 기마 초상화를 벨라스케스에 의뢰합니다. 부모인 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그리고 자신과 아내인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발타사르 카를로스의 기마 초상화였죠. 기마 초상화는 사실상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펠리페 3세의 기마 초상화, 디에고 벨라스케스, 1634-1635


그림에서 묘사되는 펠리페 3세는 갑옷을 입고 국왕으로써의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그의 모자에는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기마 초상화에서 묘사되었던 진주인 라 페레그리나 진주가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같이 그려진 아내 마르가레테의 기마 초상화와 대칭 구조로 이뤄져있었습니다. 이 초상화 역시 펠리페 3세의 사후에 그려진것이기에 그의 얼굴은 아마도 기존 초상화를 보고 그린것일 것입니다. 또 그의 아내의 초상화처럼 벨라스케스의 공방에서 상당히 그려진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펠리페 3세, 1617년 이전, 안드레즈 로페스 폴란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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