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들의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 (2) : 테레사와 우라카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했기에 여성들이 왕위계승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계승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 역시 초대 국왕이었던 아폰수 1세 역시 어머니인 테레사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포르투갈 백작령을 바탕으로 왕국을 성립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포르투갈을 독립을 위한 시작은 아폰수 1세의 어머니인 테레사가 시작했었죠.
테레사가 대담하게 정치와 군사에 관여했던것은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인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6세를 닮아서 였을 것입니다. 알폰소 6세 역시 여러개로 나뉘어져있던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를 통일하려했고 "모든 스페인인의 황제"정도로 해석될수 있는 Imperator totius Hispaniae라는 칭호를 쓰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알폰소 5세를 닮은 사람은 테레사 한명만이 아니었습니다. 알폰소 5세의 성인으로 성장한 적자 딸이자 장녀였던 우라카 역시 아버지인 알폰소 5세를 닮은 여성이었습니다. 알폰소 5세의 자녀들중 적자는 유일하게 우라카 밖에 없었습니다. 알폰소 5세는 정부에게서 산초라는 아들을 얻었으며 이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투중 사망했고 결국 알폰소 5세에게는 딸들밖에 남지 않았죠. 그리고 알폰소 5세의 유일한 적자였던 우라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라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1세와 재혼해야했는데 이것은 불행한 결혼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국의 각지역에서 반란을 초래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라카는 남편의 반대편에 서게 되고, 내전의 끝은 결국 부부가 갈라서서 부부가 각자의 나라를 통치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 시기 테레사와 그녀의 남편인 앙리(엔리크)는 알폰소 1세를 지지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자신들의 영지를 공고히 하는데 유리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전상황중이었던 것을 이용해서 레온 지방을 공격하기도 했었습니다.
1112년 우라카는 아라곤의 알폰소 1세와 이혼했고 테레사는 과부가 됩니다. 그리고 우라카는 혼란해진 나라의 상태를 수습하기 시작합니다. 우라카는 다시 한번 자신이 물려받은 영지들을 통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테레사는 언니의 신하가 될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국 자매들은 전쟁을 벌였죠. 전쟁은 우라카의 승리로 끝나게 되지만 우라카 역시 동생을 완전히 억누를수는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포르투갈 백작령을 동생에게서 뺏을수는 없었으며 단지 여전히 신하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마무리 했습니다.
레온과 카스티야의 여왕이었던 우라카는 자신의 왕국을 재통일한 인물로 에스파냐를 성립하는데 기여한 이사벨 여왕 이전의 가장 뛰어난 여성 군주로 평가받기도 하는 여성입니다. 하지만 이런 언니를 상대로 전쟁을 했었던 테레사 역시 언니 못지 않은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