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 (3) :테레사와 아폰수 1세
사실 중세에 여성이 단독으로 왕국을 통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여성의 단독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남편이나 아들이 아내나 어머니의 권리를 통해서 통치하게 되죠.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테레사나 우라카 모두 군주로써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통치를 위해서는 "남성"의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둘은 모두 아들들이 있었기에 이 아들들과 함께 통치할수 있었는데 사실상 미성년인 자녀가 정치에 관여할수 없었기에 스스로 통치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테레사 역시 아들인 알폰수를 대신해서 포르투갈 백작령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아들인 아폰수는 정치에서 배제당하고 있었죠. 게다가 포르투갈 백작령은 테레사 자신의 권리로 통치할수 있는 영지였기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인 아폰수는 점차 자라났습니다. 권력은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라도 나눌수 없는 것이었기에, 아폰수와 테레사의 갈등은 눈에 불보듯 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권력다툼의 시작은 1126년 테레사의 언니인 우라카 여왕이 사망하면서 시작됩니다. 우라카가 죽은 뒤 그녀의 아들이자 뒤를 이은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7세는 이모에게 자신을 상위군주로 인정하는 충성맹세를 하도록 요구합니다. 늘 독립적 국가를 통치하길 원했던 테레사는 당연히 이를 거절합니다. 결국 알폰소 7세는 포르투갈 백작령을 쳐들어갔으며, 상위 군주로써의 지위를 다시 확인시켰죠. 이 사건은 테레사가 포르투갈 지역 귀족들이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됩니다. 이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었으며 이미 두번이나 레온과 카스티야의 군주에 굴복한 테레사가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아폰수에게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아폰수는 이미 성인이었을뿐만 아니라 기사로 서임해서 군대를 이끌수 있기도 한 인물이었습니다.
테레사는 갈리시아 귀족이었던 페르난도 페레스 데 트라바와 연인관계였으며 또한 그와 정치적 파트너이기도 했습니다. 테레사는 그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포르투갈 백작령을 통치하는 지위를 부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결국 테레사가 지위를 뺏기는 것은 페르난도 페레스 데 트라바를 비롯한 갈리시아 쪽 귀족들의 영향력을 잃는 것마저 의미했기에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모자는 결국 전쟁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1128년 기마랑이스 근처에서 치뤄진 상 마메즈 전투 Batalha de São Mamede에서 아폰수는 어머니인 테레사의 군대를 물리쳤으며, 단독으로 포르투갈 지역을 통치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폰수를 중심으로 뭉친 기사들은 포르투갈의 독립을 원하던 세력들이었으며 이 전투이후 포르투갈은 결국 독립을 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