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왕국을 성립하기 위한 노력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 (4) 아폰수 1세

by 엘아라

1077년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6세는 스스로에 대해서 ego Adefonsus imperator totius Hispaniae ("I, Alfonso, emperor of all Spain") 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강조했습니다. 그가 죽은후 그의 왕국은 그의 딸들이 물려받게 되죠. 적장녀인 우라카가 그의 왕국을 상속받았으며, 다른 딸인 테레사는 결혼할 무렵 이미 아버지로부터 포르투갈 백작령을 받게 됩니다.


우라카와 테레사에게는 각각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들인 알폰소와 아폰수가 있었습니다. 이들 둘은 나란히 어머니들에게서 각각 영지를 이어받게 됩니다. 우라카의 아들인 알폰소는 어머니가 죽은뒤 어머니의 왕위를 계승해서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7세가 됩니다. 반면 테레사의 아들인 아폰수는 어머니인 테레사와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포르투갈 백작 지위를 확고히 하게 됩니다.


800px-D._Afonso_Henriques_-_The_Portuguese_Genealogy_%28Genealogia_dos_Reis_de_Portugal%29.png 포르투갈의 아폰수 1세.16세기 작품


아폰수를 지지한 귀족들과 기사들은 포르투갈이 독립을 하길 원했었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테레사에게 기대를 했었습니다만 결국 알폰소 7세에게 굴복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들이 테레사와 갈등관계였던 테레사의 아들 아폰수를 지지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폰수 역시 이들의 바램과 뜻을 함께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폰수의 초기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사촌인 알폰소 7세에게 그의 봉신으로 충성을 맹세해야했었습니다.


그러나 아폰수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다시한번 일전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전에 이베리아 반도 내의 이슬람 세력을 공격해서 이들의 영토를 차지하면서 자신이 독립 국가의 군주가 되는 것에 대한 명분을 쌓게 됩니다. 특히 1139년 오우리케 전투Batalha de Ourique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아폰수는 드디어 스스로 독립 국가의 군주임을 선언하게 되죠.


800px-Museu_Alberto_Sampaio-Frei_Manuel_dos_Reis_-_Dom_Afonso_Henriques-Batalha_de_Ourique.jpg 오우리케 전투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의 계시를 보는 아폰수 1세, 17세기 작품


알폰소 7세는 당연히 포르투갈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사촌의 행위를 반란으로 여겼으며 결국 알폰소 7세의 군대와 아폰수의 군대는 맞붙게 됩니다. 1140년 또는 1141년 치뤄진 발데베스 전투Torneio de Arcos de Valdevez에서 아폰수는 사촌인 알폰소 7세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의 결과 1143년 포르투갈의 독립을 승인하는 자모라 조약Tratado de Zamora이 체결되게 되죠.


800px-Estaci%C3%B3n_de_tren_S%C3%A3o_Bento%2C_Oporto%2C_Portugal%2C_2012-05-09%2C_DD_03.JPG 포르투에 있는 상벤토 기차역에 장식된 발데베스 전투의 모습


이후 아폰수는 확고한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1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이슬람세력과의 전투를 통해서 영지를 넓혀나갔는데 특히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는 리스본 역시 아폰수 1세때 포르투갈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Siege_of_Lisbon_-_Muslim_surrender.jpg 리스본 포위 공격때의 아폰수 1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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