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하나때문에 러시아 황실이 망한 것은 아님

가벼운 역사 이야기 : 러시아 혁명과 혈우병과의 관계

by 엘아라

많은 흥미로 보는 역사 이야기들 복잡한 역사를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많은 사항을 봐야하고 많은 조건을 고려해야합니다. 그러면 재미가 없어지게 되죠.

그렇기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어떤 특정한 요인을 부풀려서 단순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흥미위주의 이야기는 "아 이런 상황도 있었구나"정도로 이해해야하는 것임에도, 그것이 마치 사건의 전부인양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 대혁명이 마리앙투아네트 때문에 일어났다는 식의 설명이나 또 지금 이야기할 혈우병때문에 러시아 황실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그런것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유럽 왕가의 혈우병 유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성염색체와 관련된 유전의 전형적인 현상으로 생물학 교과서에는 늘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도가 나올 정도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서 유럽 왕가사람들의 일부는 혈우병을 앓게 됩니다.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에 나타나는 유전병이었으며 여왕의 자녀들이 유럽 여러 왕가와 통혼하면서 몇몇 왕가에 혈우병을 앓는 후손들이 난것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그리 크지 않는데 혈우병이 나타난 왕가는 러시아,에스파냐,헤센 대공가 그리고 프로이센 왕가입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혈우병이 나타난 후손들



빅토리아 여왕이 보인자인것이 분명한 것은 여왕의 막내아들인 레오폴드가 혈우병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왕이 보인자가 될 수 있으려면 돌연변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머니인 켄트 공작부인이 보인자여야합니다. 왜냐면 여왕의 아버지는 혈우병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여왕의 외가와 모계 가문중에서 어느쪽도 혈우병이 나타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는 일반적으로 돌연변이를 통해서 나타난것으로 추정합니다. (실제로 가족력 없이 혈우병이 나타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가끔 여왕이 사촌인 앨버트 공과 결혼했다고 근친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왕의 선조들은 거의 근친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사람들과 혼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여왕의 자녀들도 역시나 근친혼이라고 불릴만큼 가까운 친척들과 혼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친척이라고 표현하냐구요. 유럽 왕가들은 얽히고 섥혀서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어딘가에는 걸리는 친척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혈우병이 발생과 근친혼은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 것이죠.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 1861년


혈우병 유전 법칙에 따라 여왕의 건강한 아들인 에드워드 7세가 왕위를 물려받은 영국 왕가는 혈우병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막내아들인 레오폴드가 혈우병 환자였지만 레오폴드는 일찍 죽었고 그의 아들은 혈우병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레오폴드의 딸인 앨리스는 보인자였으며 그녀의 자녀들은 혈우병 환자거나 보인자였습니다만 앨리스는 영국 귀족가문으로 시집갔습니다.)


막내아들인 레오폴드와 함께 있는 빅토리아 여왕, 남편이 죽은후 여왕은 저렇게 평생 상복을 입고 지냈습니다.


여왕의 자녀들중 확인되는 보인자는 두명입니다. 둘째딸인 앨리스와 막내딸인 베아트리스였죠. 앨리스는 헤센의 대공과 결혼했으며 다섯명의 딸과 두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중 어릴때 죽은 아들 한명이 혈우병 환자였으며.두딸인 이레네와 알릭스가 보인자로 확인되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헤센 대공가문의 방계 가문출신인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와 결혼했으며 에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딸과 세명의 아들을 뒀습니다. 그중 막내아들이 혈우병환자였고 에나가 보인자였습니다.


상복을 입고 아버지의 흉상앞에 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다섯 딸들



그리고 러시아와 관련되는 사람은 바로 앨리스 공주의 막내딸인 헤센의 알릭스입니다.알릭스는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을 받았기에 알렉산드라 황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죠. 알릭스는 보인자였으며 그녀의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인 알렉세이가 혈우병환자였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 황실이 몰락하면서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에 이어진 혈우병 유전자에 대한 언급이 시작됩니다. 사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을 신임하게 된 원인이 아들 알렉세이의 혈우병의 고통을 라스푸틴이 그나마 완화시켜줄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라스푸틴을 신임하면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주변 다른 러시아 황실 가족들이나 신하들과 고립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잘못된 충고를 받아들여서 여러가지 실책을 했고 결국 이런 실책들이 쌓이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진것도 맞습니다.


니콜라이 2세와 헤센의 알릭스, 약혼때


하지만 과연 라스푸틴 하나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니콜라이 2세 시절의 러시아는 20세기의 나라이긴 했지만 나라의 시스템은 20세기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19세기부터 러시아를 개혁해야한다는 생각들이 있었으며 니콜라이 2세의 할아버지였던 알렉산드르 2세 시절 여러가지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것이 농노제 폐지였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정책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러시아 내에서 개혁이 중단되자 도리어 극단적인 사람들이 등장해서 황제를 몰아내고 개혁을 완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들은 황제와 황실 가족들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고 실제로 알렉산드르 2세는 폭탄테러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3세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는 점점더 커지게 되었으며, 알렉산드르 3세와 그 가족들에 대한 테러는 여전히 이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생으로 모스크바 총독이었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도 테러로 사망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 내에서 황제를 몰아내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는 것으로 적어도 러시아 혁명이 라스푸틴 한명이 등장하고 거기에 홀린 황제와 황후의 실책으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 그는 폭탄테러로 치명상을 입었고 궁전으로 돌아간 직후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전 러시아의 위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19세기의 유럽 최고의 국가였았지만 20세기가 되면서 국내의 여러문제들 뿐만 아니라 대외적 위상 마저도 마구 흔들리게 되죠. 가장 대표적인 예가 러일전쟁의 패배였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결국 니콜라이 2세가 20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헌법"을 인정하는 입헌군주제로 가는 것을 승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1차대전이 시작되었으며. 1차대전에서 러시아는 독일에 큰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엄청난 이들이 포로가 되었으며 이런 상황은 불만을 안그래도 힘든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중시켰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되면서, 온건한 개혁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게 된 상황을 만든것이었죠. 물론 혁명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니콜라이 2세가 정치적으로 오판한 것이 많았으며 라스푸틴의 조언을 받아들인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흔들리고 있던 나라였기에 조그만한 실수로도 사건이 크게 될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니콜라이 2세의 이런 실수들은 결국걷잡을수 없이 커지게 됐던 것뿐이었습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둘의 다섯 아이들


러시아의 전기 작가로 니콜라이 2세의 전기와 알렉산드르 2세의 전기를 썼던 에드바르드 라진스키는 그가 쓴 알렉산드르 2세의 전기에서 개혁을 추진했었던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테러로 사망하는 그 순간 이미 황실가족의 운명은 결정되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단순히 생각하면 명확히 이해하기는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단순히 생각하고 그것만이 다라고 여긴다면 결국 그 사건에 대한 본질은 제대로 들여다 볼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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