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와 명성은 물론 존경까지 받았던 인물
안토니오 마리아 베르나치는 1685년 볼로냐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당대 유명한 음악교사중 하나였던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피스토치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701년경 팔츠의 선제후였던 요한 빌헬름 2세의 궁정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1703년 제노바에서 오페라 무대에 처음 서게 되죠.1714년 베르나치는 안토니오 파르나세로 부터 "명인"칭호를 얻게 되었고 이것은 그의 명성을 전 유럽에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베르나치는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들이었던 하세,빈치,스카를라티등의오페라에 출연했으며 1712년에서 1724년사이에서 베네치아에서 특히 자주 무대에 섰었다고 합니다. 1720년에는 바이에른 선제후의 초대로 뮌헨으로 갔는데, 역시 뮌헨에도 자주 방문해서 노래를 불렀었다고 합니다. 1727년에서 1728년 시즌 무렵 베르나치는 카레스티니와 같은 단체에 소속되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는 카레스티니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당대에서 추구하던 라이벌관계와 더불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그가 카레스티니를 다른곳으로 떠나게 하려 노력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베르나치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결국 베르나치는 밀라노로 가버리죠.
1729년 베르나치는 헨델에게 고용되어서 런던으로 갔으며 여러 오페라에 출연하게 됩니다. 두편의 오페라에 주연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여러다른 오페라에서 주연배우의 라이벌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었죠. 베르나치는 유럽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었지만 런던에서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그는 가수로 매우 재능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세네시노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1736년 베르나치는 대중을 위한 오페라 무대는 은퇴하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적 콘서트는 꾸준히 열었으며 동료들과 함께 교회음악을 부르는 것은 계속했다고 합니다.또 고향인 볼로냐로 돌아간 베르나치는 볼로냐에서 음악학교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작곡가로도 활동했는데 몇몇 교회 칸타타와 듀엣곡등이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1756년 베르나치는 볼로냐에서 사망했으며 많은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베르나치는 영국에서 "음역이 매우 넓고,깊고 깔끔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네시노보다 달콤하지 않았으며 세네시노보다 괜찮은 사람은 아니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가수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너무 기계적인 기교에 몰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르나치의 선생님이었던 피스토치는 제자에게 "난 네게 노래하는 법을 가르치는데,너는 연주하는 법을 (배우길)원하는구나"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