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자리도 필요없어!무조건 영국은 싫어!

가벼운 역사이야기 :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며느리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by 엘아라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딸로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아들인 앨프러드와 결혼했었습니다. 사실 둘의 결혼은 양가 부모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었습니다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양가 부모는 결혼을 허락했었죠.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앨프러드


부푼 꿈을 안고 영국으로 시집안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차르가 가장 예뻐하는 자녀이자 고명딸로 모두가 그녀에게 호의적이었었습니다. 게다가 매우 지적이며 교육도 잘 받은 여성이었죠. 하지만 영국에서의 생활은 러시아에서의 생활과 전혀 달랐습니다. 영국 사교계는 러시아 사교계와 달랐으며 외국인이며 특히 러시아인이었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적이며 똑똑했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자신보다 그다지 지적이지도 않았지만 왕위계승자의 부인으로 아름답다는 이유로 큰동서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더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알렉산드라 역시 거만한 아랫동서를 좋아하지 않았죠. 게다가 영국에서는 까탈스러운 시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이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시누이들도 있었죠.


시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과 시누이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함께 있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결국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영국을 지긋지긋해했고 영국을 떠나길 바랍니다. 그녀의 남편인 앨프러드는 백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후계자였으며 이때문에 그녀는 시백부가 죽으면 독일에서 살수 있었기에 어서 그런날이 오도록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 남편을 따라 몰타에서 살면서 마음을 달랬을 것이기도 하구요.


몰타에 있는 동안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시조카였던 웨일스의 조지는 해군으로 자주 숙부의 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10살 어린 사촌여동생이자 "미시"라는 애칭의 마리에게 반해버렸습니다. 사실 어린시절부터 이미 미모가 드러났었던 미시는 자라면서 더욱더 아름다워졌으며 조지는 미시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모두가 그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을 알도록 따라다녔습니다.


몰타에서 앨프러드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그리고 둘의 다섯아이들, 그리고 웨일스의 조지(조지5세),헤센의 에른스트루드비히, 바덴의 막시밀리안(막스) 조지 5세는 근처에 있죠.


그리고 조지의 형인 에디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조지가 이제 아버지의 계승자가 되었고 할머니-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국의 왕위계승자가 되게 됩니다. 이때문에 조지는 서둘러 결혼해야할 의무가 생겼으며 당연히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있던 미시를 결혼 상대로 생각합니다.

이 혼담에 대해서 둘의 아버지들인 웨일스 공과 에든버러 공작은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하지만 둘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결사 반대하죠. 물론 빅토리아 여왕은 찬성하는 쪽이었습니다만, 영국을 끔찍히 싫어했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딸에게 조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떨어져지내라고 강요합니다. 어린나이였기에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애매했던 미시는 어머니의 강압에 따르게 됩니다.


결혼할때 쯤의 미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서둘러 다른 혼처를 찾아서 딸을 얼른 시집보내버립니다. 비록 찾은 혼처는 루마니아의 왕위계승자였지만 사실 당대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의 왕비자리보다는 못한 자리였던 것도 분명했죠. 이처럼 마리야는 딸이 영국 왕비가 될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영국에 대한 반감으로 딸을 영국으로 보내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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