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러시아의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대공과 그의 아내이자 오래도록 "미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야심만만한 부부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미헨 대공비는 오래도록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교회식 이름을 나중에 받아서 일반적으로 미헨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됩니다.)
이 부부의 사이에서는 아들셋과 딸이 한명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의 딸은 옐레나라는 이름을 받게 되죠. 야심만만했다고 알려져있던 이들 부부는 당연히 딸을 시집 잘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헨 대공비는 딸에게 좋은 혼처를 찾아주려하죠.
미헨 대공비가 찾은 신랑감은 "막스"라는 애칭의 바덴의 막시밀리안이었습니다. 바덴의 막시밀리안은 바덴 대공의 아들이었던 바덴의 빌헬름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의 외손녀였던 로이히텐베르크의 마리야 막시밀리아노브나의 아들이었습니다. 당대 바덴의 막시밀리안은 딸가진 유럽의 왕가 사람들이 누구라도 탐내던 사윗감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미헨 대공비는 이런 멋진 사윗감을 찾은데 흐믓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덴의 막스는 어느날 갑자기 약혼을 깨버립니다. 약혼을 깨버린 이유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제가 아는 분의 표현에 의하면 요즘 같으면 "우리 헤어져"라고 문자 날린후 잠적해버린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흐믓한 사윗감이 갑자기 죽일X가 되어버린 상황인것이죠. 미헨 대공비는 열받았지만 약혼은 깨졌고 뒷 수습을 해야했습니다. 문제는 당대 이런 파혼이 일어나면 일반적으로 여자쪽이 더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둘의 파혼에 대한 가십이 전 유럽 궁정에 짜~~하게 돌았으며, 미헨대공비의 딸이었던 옐레나 여대공은 이후 혼담을 찾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물론 미헨 대공비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깨져버린 혼담보다 더 좋은 혼처를 찾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르게 되죠. 그리고 미헨 대공비는 왕위계승자나 황위계승자 위주로 혼담 대상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잘 성사되지 않습니다. 특히 1899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동맹을 맺으려했으며 이 결과 옐레나 여대공은 오스트리아의 황위 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혼담이 오가고 이 혼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어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훗날 모두가 알게 되는 것처럼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조피 호테크를 사랑했고 그녀와 귀천상혼해버리죠.
이렇게 옐레나 여대공의 혼담이 잘 안되는 동안, 사실 옐레나 여대공에게 반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의 니콜라오스 왕자였죠. 그는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의 셋째아들이었죠. 그의 어머니인 올가 왕비는 엘레나와는 오촌관계였으며 왕비는 어려서 시집와서 러시아를 그리워했기에 자주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아마 니콜라오스 왕자도 이때 옐레나를 만났을 것입니다.
당연히 미헨 대공비 입장에서는 니콜라오스 왕자가 눈에 찰리가 없었습니다. 그리스 왕가는 그리 힘있는 왕가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니콜라오스 왕자는 셋째 아들이었기에 왕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옐레나의 혼담이 자꾸 무산되면서 옐레나를 다른 왕가로 시집보내는 것은 더욱더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미헨 대공비는 딸과 니콜라오스 왕자와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죠.
어려서부터 거만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옐레나 여대공은 그리스로 시집와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거만하다"라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인 니콜라오스 왕자와 매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합니다.
역시 인연은 따로 있는듯하네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