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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도토리묵

도토리묵을 먹을때 마다 생각나는 맛

by 엘아라

할머니가 계신 큰집은 어린시절부터 자라는 동안 오래도록 주로 명절에 찾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어린시절의 큰집은 차를 몇번이나 갈아타고 가야하는 곳이었죠. 명절에 차를 몇번씩이나 갈아타면서 가는 것은 지금이라면 아마 고생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만 그땐 그런 생각을 못했었죠. 왜냐면 가면 좋은 것들이 많았으니까요.


명절에 간 큰집에는 늘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명절에 하는 여러가지 음식들과 간식들....

어린시절부터 먹을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저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명절때마다 만나는 할머니는 평생 날씬해본적이 없는 손녀를 보면서 늘 "(지난번보다) 아(아이)가 홀쪽해졌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게 해주셨죠. 아직까지도 가끔 할머니 이야기를 할때면 부모님께서는 늘 "쟤보고 홀쪽해졌다고 하셨다"라고 웃으시면서 이야기 하시고는 합니다. 얼마전 읽은 소설에서 할머니가 늘 함께 지내던 손녀가 하룻밤 다른 곳에서 지내고 왔을때 손녀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밖에서 자니 살이 빠진것같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읽으면서 할머니 생각이 너무 많이 났습니다.


명절에 그렇게 음식들 중에 지금까지도 늘 생각나는 한 가지 음식은 바로 도토리 묵입니다. 할머니의 도토리 묵.


언듯 들은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할머니의 도토리묵 만드는 방식은 매우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언떤방식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도토리묵 만드는 것을 도와드린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솔직히 먹을줄만 아는 제가 알아들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죠.


어떤 복잡한 방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수 없지만 할머니의 도토리묵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매끌매끌하면서도 도토리 특유의 쓴맛이 하나도 없는 정말 맛난 맛이었습니다. 특히 너무나 매끌매끌해서 젓가락으로는 절대 안 잡히고 숟가락으로 떠먹어야할정도였죠. 사실 어린 저에게는 이런 도토리 묵 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맛있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의 도토리묵은 일반적으로 만드는 명절 음식과는 또다른 무엇인가 있는 느낌의 음식이었죠.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되었고 할머니의 도토리묵을 먹은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자라서 어디선가 도토리묵을 먹을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늘 먹을때마다 할머니의 도토리묵이 떠오릅니다. 아 할머니 도토리묵은 색깔이 더 까맸는데, 할머니의 도토리묵은 더 매끌매끌 거렸는데, 할머니의 도토리묵은 덜 씁쓸했는데...라고 말이죠.


하지만 문득 할머니의 도토리묵을 그대로 재현한 묵을 만난다고 해도 어쩌면 저는 이것은 우리할머니의 도토리묵이 아니야. 할머니 도토리묵보다 덜 매끄럽고, 덜 까맣고 더 씁쓸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듯합니다. 왜냐면 할머니의 도토리묵은 제 기억속의 할머니의 추억이 더해진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이죠. 저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낼수 없는 무엇인가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일테니까요.


IMG_3599.JPG 문득 먹고 싶어서 산 도토리묵, 맛나긴 했지만 제가 생각하던 그 도토리묵 맛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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