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이야기 : 팜플로나의 공주 온네카 포투네스
이베리아 반도는 8세기 이슬람의 침입을 받았으며 이후 가톨릭 공동국왕이었던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그라나다가 함락되는 1492년까지 이슬람 세력이 존재했었습니다. 이 상황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기도 했었지만 서로를 필요로하면서 협력을 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바스크인들이 모여살던 팜플로나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된 기독교 국가로 후대에는 나바라왕국이라고 불리게 되는 팜플로나 왕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더 무슬림과의 연결고리가 깊었습니다. 이를테면 팜플로나의 초대 국왕으로 알려진 이니고 아리스타에게는 무슬림 이부동생이 있었으며 이 이부동생은 인근 지역의 가장 강력한 부족장이었기에 그가 나바라를 건국했을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물론 팜플로나 왕국이 무슬림의 도움만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 가까이 살기에 당연히 위협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정치 상황은 아마도 무슬림 궁정으로 간 한 팜플로나의 공주 이야기에 잘 나타날것입니다.
기독교세계에서는 온네카 포투네스 또는 이니카 포투네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으며 아랍 세계에서는 두르Dur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팜플로나의 국왕 포르툰 그라세스의 딸로 이라고 이야기됩니다. 포르툰 그라세스는 860년 무슬림과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딸인 온네카는 아버지와 함께 포로가 되었거나 또는 후에 아버지가 있는 코르도바의 무슬림 궁정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온네카 포르투네스는 코르도바의 에미르였던 무함마드 1세의 아들인 압둘라와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한뒤 그녀는 무슬림식 이름으로 두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압둘라의 아들인 무함마드를 낳았으며 두명의 딸을 더 낳았다고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온네카의 아들인 무함마드는 아버지의 묵인하에 동생에 의해서 암살당했지만 무함마드의 아들이자 온네카의 손자였던 압드 알 라흐만 3세는 코르도바의 에미르가 되었으며 후에 칼리프 칭호를 쓰는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기독교 기록중 하나에는 온네카 포투네스가 기독교인 남성과 결혼해서 딸들인 토다 아스나레스와 산차 아스나레스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 두 딸들은 모두 팜플로나의 왕비가 되는데 재미난 것은 토다 아스나레스의 남편인 산초 1세의 경우 팜플로나의 초대 왕가였던 이니케스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비록 권력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긴 했었지만 그가 국왕이 될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아내가 팜플로나 국왕의 외손녀인것도 크게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자주 여성의 왕위계승권리를 인정해왔으며 여기서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토다의 아들인 그라시아 산체스는 팜플로나의 국왕이 되었죠.
이렇게 온네카 포르투네스는 무슬림 군주인 칼리프 압드-알-라흐만 3세의 친할머니이자 기독교 군주인 팜플로나의 그라시아 1세(그라시아 산체스)의 외할머니가 됩니다.
더하기
연대기의 기록은 연도상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면 기록에 따른 해석의 문제로 그녀가 무슬림 궁정에 머무는 동안 기독교인 남편과 결혼했다는 결과가 나오는 해석을 할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온네카가 첫결혼으로는 무슬림 에미르와 결혼했으며 이후 무슬림 가족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와서 기독교인 남편과 두번째 결혼을 했다고 해석하므로써 해결한다고 합니다.
물론 무슬림과 결혼한 온네카 포르투네스는 포르툰 그라세스의 딸이 분명하기에, 기독교인과 결혼한 팜플로나의 공주는 온네카가 아니라 다른 공주인 온네카의 고모라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