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전화를 연결할수 없습니다.

가벼운역사이야기 : 에드워드 8세가 정부와 헤어지는 법

by 엘아라

이혼녀를 용납하지 않던 영국 왕실에서 세번이나 이혼을 한 여성이었던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서 왕위를 포기했다고 알려진 에드워드 8세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는 "세기의 사랑"이라고 자주 이야기 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정말 그렇게나 지고지순한 인물이었는지는 고민해봐야합니다. 왜냐면 에드워드 8세가 월리스 심슨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기전 그가 다른 여자 친구와 헤어진 방법은 굉장히 잔인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에드워드 8세, 웨일스 공 시절, 1919년, 조지 5세의 아들들중 제일 잘생긴 아들이었던 그는 당대 여성들의 동경하던 왕자님이었습니다.


아직 왕위계승자인 웨일스 공 시절의 에드워드 8세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해야하는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버텼으며 자유롭고 즐겁게 살길 바랬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할아버지였던 에드워드 7세 처럼 유부녀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죠. 다른 점은 할아버지는 그래도 결혼은 했지만 그는 결혼하지 않다는 점 정도랄까요.


에드워드 8세는 1918년부터 "프레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위니프레드 더들리 워드라는 여성과 연인관계가 됩니다. 프레다는 윌리엄 더들리 워드라는 정치가와 결혼한 유부녀였었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8세는 프레다에게 푹 빠져버렸으며 그녀와의 관계를 모두에게 드러내게 됩니다. 미혼인 웨일스 공이 유부녀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스캔들 감이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에드워드 8세가 프레다에게 빠진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27년 웨일스 공의 캐나다 공식 방문에 동행한 프레다


이후 에드워드 8세는 또 다른 유부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텔마 퍼네스라는 미국 출신의 유부녀로 퍼네스 자작의 아내였습니다. 물론 이 상황은 프레다에게 위협이 되긴 했지만 에드워드 8세는 한 동안 두 여성들을 모두 만났었고 프레다의 지위는 괜찮은듯했었습니다.


웨일스 공과 텔마 퍼네스, 1932년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점차 프레다에 대한 애정이 식게 됩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8세와 프레다의 사이는 매우 어색하게 끝나게 되죠.


1930년대 어느날 프레다는 웨일스 공이 몇주간이나 자신을 부르지 않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인트 제임스 궁으로 전화를 걸어서 웨일스 공에게 무슨 일인가 물어보려했었죠. 하지만 당시 전화 교환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더이상 당신의 전화를 연결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프레다 더들리 워드, 에드워드 8세의 정부


에드워드 8세는 자신과 십여년을 넘게 함께 했던 여성에 대해서 이런식으로 끝내버렸습니다. 그가 과연 낭만적인 인물이라면 이렇게 끝낼수 있었을까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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