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러시아의 크세니아 여대공과 알렉산드르 대공
러시아의 크세니아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와 그의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첫째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많은 친척들을 만났었죠. 그리고 그중에서 자신의 오촌이었던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에 대해서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산드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던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은 니콜라이 1세의 손자이자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바덴의 체칠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크세니아보다 아홉살이 많았으며 해군이었습니다. 10대 초반이었던 크세니아는 특별히 이 친척에게 더 다정다감했는데 어린 그녀는 산드로가 해군 임무로 멀리 떠나게 되었을때 자주 편지를 했으며 그에게 서둘러 돌아오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산드로는 이런 크세니아의 감정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어렸었지만 크세니아는 언제까지 12살은 아니었죠.
정략적 관점으로 볼때 산드로와 크세니아는 매우 잘 어울리는 커플이기도 했었습니다. 크세니아는 러시아의 여대공이자 황제의 딸이었기에 그녀에게 걸맞는 신분의 남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지위가 보장된 러시아를 떠나길 원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반면 산드로 입장에서는 황제의 딸을 아내로 맞는 것은 그의 지위는 물론 재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둘이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크세니아의 부모는 둘의 결혼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으며 딸을 말리게 됩니다. 왜냐면 그때 크세니아의 나이가 겨우 15살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크세니아의 사랑은 확고했고 1894년 1월 결국 둘의 결혼을 허락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오래도록 사랑을 지켜나간 커플에 대해서 크세니아의 부모가 항복한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건강이 악화되는 황제가 죽기전에 딸의 결혼을 보려한 것도 있을 듯합니다. 크세니아는 1894년 7월 결혼했는데 신혼여행동안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고 합니다.
오랜 사랑의 결실로 결혼한 둘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둘 사이에서는 딸한명과 여섯명의 아들이 태어났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부부가 되죠.
하지만 이 부부의 행복은 1907년 이후 끝나게됩니다. 아마 권태기가 찾아왔던 부부사이는 점차 벌어지게 되는데 산드로는 많은 로마노프 대공들처럼 다른 여자들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된 크세니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 역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죠. 많은 대공비들이 그저 참고 살았던것과 달리 황제의 딸이자 황제의 여동생이었던 크세니아는 적어도 그저 참고 살지만은 않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부부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됩니다. 어느쪽이 먼저였든지 결국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렸던것입니다. 신뢰가 깨진 부부는 이제 서로 함께 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의 대공과 여대공이었으며 이것은 부부간에 문제가 있더라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때문에 헤어질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결국 부부는 한집에 살긴했지만 더이상 한방을 쓰지 않았으며 자주 떨어져있게 됩니다.
1917년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났으며 부부는 크세니아의 어머니인 황태후와 함께 간신히 영국 전함을 타고 러시아를 떠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크세니아는 영국에서, 알렉산드르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죽을때까지 함께 같이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