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로맨스 소설을 쓸수 있을까? 번외편
나는 주로 역사 이야기, 그것도 주로 서유럽의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다. 덕분에 내가 읽는 자료들은 주로 영어자료가 많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언어를 알면 좋겠지만 나는 불행히도 외국어에 대한 능력은 많이 떨어진다. 사실 영어도 진짜 힘들게 공부한것으로 흑역사를 밝히자면 나는 영어시험성적을 못내서 졸업이 늦어졌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영어를 읽냐고 묻는다면 울면서 매일 읽으니까 늘긴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읽고 글을 쓰는 것과 번역은 참 다른것이다. 비록 내가 쓰는 글이 어쩌면 원문을 번역한것과 비슷하게 쓸수도 있지만 (물론 이렇게 안되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중이다.) 결국은 내 머릿속에서 한번 순화를 거쳐서 내표현대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나의 표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원작자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원작자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번역을 해야 그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독자들에게 이해시킬수 있는 어렵고도 힘든 작업인 것이다.
중국어 소설을 처음으로 번역해서 읽은 것은 "화락연운몽"이라는 소설이었다. 일단 전반적으로 한번 다 읽지 않고 무턱대고 읽어보겠다고 번역하기 시작한것이었다. 게다가 중국어는 진짜 하나도 모르고 오직 번역기를 돌려서 단어하나하나를 찾아가면서 번역했기에 뭐랄까 그냥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상황이었다고 할까 그랬다. 어쨌든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작업은 참 좋았다. 적어도 언어표현을 직역수준으로 번역하면서 내가 중국 문화를 좀 이해할수 있었다고 할까 그랬다.
물론 현재 이 소설 작가 안티가 된것은 안비밀이다. 개연성따위는 개나줘버린 전개에 역사를 매일 읊지만 정작 자기네 나라 역사도 제대로 고증하지 않는 모습에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 소설에 대해서 우리나라에 대해서 역사왜곡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뭐 자기네 나라 역사도 제대로 고증안하는데 무슨 외국까지 신경쓰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금 19세기 러시아에 대한 소설을 쓰면 딱 이럴것같다는 느낌이랄까 그랬다.(...어랏 이거 스포네?)
어쨌든 좌절의 이 소설을 보면서 우울해하다가 인생 소설이 된 "서녀명란전"을 만났다. 이 소설의 경우는 번역해서 읽기 전에 대충 번역기를 돌려서 내용을 상당부분 봤다. 이것은 내가 의외로 내가 소설속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중요했다. 인물에 대한 성격을 잡고 번역을 시작하니 뭐랄까 말투라던가 세세한 부분을 신경쓸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명란이는 마치 직장생활을 하는 말단 사원처럼 상사들(언니,오빠,아버지,적모,서모등)에 대해서 궁시렁대지만 결국 이들의 비위를 맞춰야했고 행동과 생각이 전혀다른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결혼하고 나서도 같이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명란의 코믹한 생각이나 비유등을 더 잘 이해할수 있었던것같다. 게다가 이 작가의 유머코드는 완전 내 취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녀명란전을 읽는데 최대의 난제는 바로 문화를 이해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명란이 천월한 상황이라 인터넷 신조어나 아니면 중국에서 유행하는 유행어나 문화적 배경이 마구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중국어도 겨우 번역기한테 배우고 있는 나에게는 진짜 치명적이었다. 이사형,삼사제는 도대체 뭐냐고? 외치기도 했고, 도대체 간장사러가는것이 뭐냐고!!를 외치기도 했다. (물론 이름만 들어본 세인트세이야가 나오는것을 보고 좌절이기도 했다. --;;)
내가 그렇게나 빌었던 서녀명란전 정식번역판이 내가 결국 번역해서 다 읽고 나서야 나왔다. 그냥 내가 번역한것이랑 얼마나 다른가? 과연 번역기한테 배운 중국어가 얼마나 괜찮나를 보려고 좀 읽었다. 그런데 읽었을때 뭐랄까 "호칭"부분을 우리나라식으로 번역한것을 보고 이렇게 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것은 내가 역사 이야기를 쓰는것과 관련이 있는데 서양의 작위체계는 사실 우리나라나 동양의 작위체계와 정확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애매한 호칭들이 나오는데 이 번역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참조"과연 어떤 용어를 써야하나 https://brunch.co.kr/@elara1020/474") 이 때문에 가끔 호칭의 경우는 우리나라식으로 하는것보다 그대로 외래어로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정식번역판에 나오는 호칭들이 나에게는 좀 낯설다는 느낌이기도 했었다.
그랬는데, 최근에 역시 번역하면서 읽고 있는 소설이 하나가 있다. 여기에는 "수보"라는 명칭이 나온다. 수보는 대충 우리나라의 영의정 정도의 지위를 가지는 지위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그냥 소설을 읽다가 이해했고 남들도 그냥 이해할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수보라는 단어를 듣고 "재상"이라고 떠올리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번역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번역해서 읽는 소설도 알콩달콩 연애질은 가뭄에 콩나듯이 나오고 맨날 사서삼경이랑 과거시험치느라 팔고문쓰는 이야기만 나온다.
아하....나 진짜 로맨스 소설을 쓸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