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혈통에 대한 의구심에 대한 영국 왕실의 자세
때는 2012년 어느날, 영국에서는 주목받는 사건하나가 일어납니다. 바로 한 지역 주차장에서 유해 한구를 발굴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살인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이 유해가 묻혔을때 이 주차장은 주차장은 커녕 차라는것 자체가 없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해를 발굴한 사람들은 바로 고고학자들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유해를 발굴한것이 왜 주목받는 일이었냐면 이 유해가 바로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3세라고 추정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처드 3세는 1485년 보스워스 전투때 전사했으며 그의 시신은 인근 교회에 묻힌것으로 알려져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유해가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 알지 못했었습니다.21세기가 들어서면서 고고학자들은 이전 기록등을 바탕으로 정확한 위치를 추정했으며 그곳이 한 레스터 지방의 한 지역 주차장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해 한구를 발굴해냅니다. 정황상 리처드 3세의 유해일 가능성이 충분했습니다만 이 유해가 정말 리처드 3세인지에 대해서는 확언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과학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DNA검사법이었습니다.
이들은 리처드 3세와 가까운 혈족의 후손들 DNA를 찾아다녔고 여러명의 DNA를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검사한 결과 이 유해가 리처드 3세의 유해라는 것을 확인했었죠.
그런데 여러가지 방법의 DNA검사중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실인가하면 리처드3세의 Y염색체 DNA와 랭카스터 공작의 후손인 5대 보퍼트 공작의 후손의 Y염색체 DNA가 동일한 혈족이 아닌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중간에 누군가가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양한 말들이 나오게 됐는데 리처드 3세는 물론 보퍼트 공작의 선조인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이나 또 다른 선조인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등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됩니다. (보퍼트 공작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남성직계후손이었습니다. 원래 장미전쟁때 에드워드 3세의 적자인 남성직계후손들은 다 사망했었는데 보퍼트 공작의 선조는 서머셋 공작의 사생아 아들이었기에 무사할수 있었으며 결국 친척인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 역시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얻을수 있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보퍼트 공작 지위까지 얻게 된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는 헨리 7세의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할아버지였고,헨리 7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주장할수 있었던 근거중 하나가 바로 어머니의 계승 권리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계승 권리를 통해서 보퍼트 가문과 랭카스터 가문 그리고 잉글랜드 왕위에 대한 계승을 주장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존 보퍼트가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아들이 아니라면 복잡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에 대한 영국 왕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혈통문제가 어떻든 간에 헨리 7세는 "정복왕"이므로 헨리 7세의 왕위계승은 정당했다라는 것입니다.
잉글랜드에서는 정복왕 전통이 있었습니다. 스웨인이나 크누트 대왕 그리고 정복왕 윌리엄의 경우 이전 왕가와 혈연관계가 없음에도 잉글랜드 국왕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서 왕위를 쟁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헨리 7세 역시 이전 국왕이었던 리처드 3세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서 잉글랜드 왕위에 오를수 있었던 것이구요.
뭐 어쨌든 이후 별말 없는것보면 그냥 연구자들이나 누구가 왕가의 혈통인지 누가 아닌지 궁금할뿐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없는것같긴합니다. ^^*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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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대에는 보퍼트 가문의 왕위계승권리에 대해서 애매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가 나중에 결혼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무리 부모가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결혼전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 적자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때문에 서머셋 백작보다 서머셋 백작의 아내(에드워드 1세의 후손)가 더 왕위계승권리가 명확했다는 언급을 하는 책도 있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