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되기까지

엘리노어 루즈벨트 (3) 성장

by 엘아라

엘리노어와 그녀의 동생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우울한 상황은 그녀가 사람들의 애정을 갈구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며 또한 그다지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여전히 상처받고 소심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상처는 어느정도 극복하게 됩니다. 자라면서 엘리노어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아마도 이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좌절하지는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며 훗날 그녀가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노어 루즈벨트, 1894년 외가에서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당대 미국의 다른 상류층 여성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외가에서 자랐지만 친가인 루즈벨트 가문 사람들 역시 당연히 엘리노어에게 신경을 썼었죠. 엘리노어의 고모로 "배미"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애나 루즈벨트는 조카들에 대해서 특히 더 많이 신경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엘리노어는 자신에게 많은 충고를 해준 사람이 바로 고모인 애나였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애나 루즈벨트, 엘리노어의 고모, 조카들에게 매우 관심있는 고모였다고 합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장녀인 앨리스를 돌본 인물도 이 애나 루즈벨트였다고 합니다.


애나는 이전까지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던 엘리노어를 영국의 런던에 있는 기숙학교인 앨렌우드 기숙학교로 보내게 됩니다. 이곳에서 엘리노어는 학교에서 사랑받는 인물이 됩니다. 매우 활기차고 의욕이 넘쳤던 엘리노어는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엘리노어를 많은 이들이 사랑한것이었죠. 어쩌면 엘리노어는 애정을 갈구하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구요. 하지만 적어도 엘리노어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자신감과 연결이 되는 것일듯합니다. 외모에 대한 생각등을 버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사람들이 자신에게 애정을 가지는 것을 발견했고 이런 상황은 그녀가 더욱더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노어 루즈벨트, 1898년, 기숙학교에서의 사진, 영국의 기숙학교에서는 지금도 학생들의 사진을 이렇게 걸어놓고 있더라구요.


엘리노어는 오래도록 학교에 머물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습니다. 당대 미국 상류층 여성들의 중요한 일상을 진행해야했죠. 바로 사교계에 데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노어는 1902년 외할머니의 뜻에 따라 미국으로 돌아왔고 사교계에 데뷔를 합니다.


사교계에 데뷔를 한다는 것은 사실 요즘에는 그다지 별 의미가 없어 보일수 있습니다만 20세기초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여성의 성인식과 마찬가지로 사교계에 데뷔하게 되면 이제 "결혼을 할 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갓 데뷔한 아가씨들은 남편감을 찾는데 집중을 하게 되죠. 물론 결혼만이 전부는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교제를 할수도 있으며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할수도 있었습니다만 일단 미혼 여성에게는 결혼이 주 목표이기도 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있는 사교계에 나가게 되면 집안 사람들이 모여서 저집에는 저런 아가씨가 있고 저집에는 저런 총각이 있으니 잘 어울리겠네 소개시켜볼까? 뭐 이런일들을 자주했습니다. -0-;;;)


1902년 12월 14일 엘리노어는 뉴욕에 있는 호텔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사교계에 데뷔를 하게 됩니다. 훗날 엘리노어는 이 파티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고 언급합니다. 외국에서 갓 돌아온 엘리노어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이런 파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는 일이 중요했는데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 엘리노어에게 이 파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파티로 남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것을 중요시 했던 엘리노어에게 이런 외톨이가 되는 경험은 여전히 그녀의 우울한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것이었기에 나쁜기억으로 남았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엘리노어 루즈벨트, 1902년 사교계 데뷔사진


사교계에 데뷔한 뒤 엘리노어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합니다. 엘리노어는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에 가입했으며 빈민가 여성들을 위해 춤을 가르쳐주거나 미용기술을 가르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는 친척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교계에 데뷔한 엘리노어가 이런 사회활동만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난것이었죠.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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