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노어 루즈벨트 : (4)결혼
엘리노어는 1902년 미국으로 돌아와서 외가로 가던중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는 멀고먼 친척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였죠.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그리 순탄한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랭클린 드라노 루즈벨트는 1882년 사업가였던 제임스 루즈벨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사라 드라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나이차가 많이 났었으며, 프랭클린에게는 거의 아버지뻘인 이복형도 있었습니다. 사실 아름답고 지적이었다고 알려져있던 사라 드라노가 자신보다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데다가 두번째 결혼이었던 제임스 루즈벨트와 결혼한것에 대해서 의외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사라의 유일한 아들이었는데 이때문에 사라는 자녀들을 유모나 가정교사에게 맡겨두던 당대 많은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과는 달리 스스로 아들의 교육과 양육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인 플랭클린 루즈벨트가 그녀의 모든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프랭클린이 엘리노어와 사랑에 빠져서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을때 사라는 아들이 결혼하기에 너무 어렸다고 여겼기에 엘리노어를 싫어한것은 아니었지만 결혼 자체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하나뿐인 아들을 뺏기는 느낌이었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라는 열렬한 민주당원이었기에 나머지 루즈벨트 가문이 공화당원이었던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을것입니다. 그녀는 아들이 민주당원인것을 자랑스럽게여겨서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대해서 "그애는 루즈벨트 가문 사람이 아니라 드라노 가문 사람이다"라고 언급할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원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통령의 조카였기에 정치적으로는 엘리노어가 그리 나쁜편은 아니었고 이것은 결국 사라가 아들의 결혼에 대놓고 테클을 걸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어머니에게 엘리노어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결국 사라는 아들과 엘리노어의 약혼을 허락합니다. 하지만약혼을 비밀로 오래도록 유지해달라고 했고 그동안 아들의 약혼을 깨려고 노력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엘리노어는 1905년 3월 17일 결혼식을 올렸고, 신부를 인도한 사람은 바로 엘리노어의 백부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였다고 합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결혼후 뉴욕에서 살게 됩니다만 단순히 이 둘 부부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시어머니인 사라도 함께였죠.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