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노어 루즈벨트 (5) 결혼생활
엘리노어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결혼생활은 뉴욕에서 시작됩니다. 프랭클린의 어머니인 사라는 신혼부부를 위해 집을 줍니다. 바로 자신의 집 옆에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엘리노어와 프랭클린은 사라와 한지붕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바로 문을 열면 사라의 집이었기에 사라는 수시로 아들의 집을 드나들면서 아들 부부의 삶에 관여하게 됩니다. 아들에게 영향력이 크던 사라였기에 아마 아들의 삶에 여전히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었으며 역시 어머니에게 매우 강하게 영향을 받았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역시 어머니의 영향력아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엘리노어에게 매우 부담되는 일이었을듯합니다. 자신의가정을 꾸려야했지만 사실상 시어머니가 집안일 모든것에 관여했으며 남편 역시 이를 당연하게 여겼죠. 엘리노어는 어린시절 부모를 잃었으며 그녀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주는 그런 사랑을 어머니에게서 받아본적이 없었기에 어쩌면 이런 간섭이 애정이라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처음에는 시어머니의 영향력을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자녀들의 교육과 양육은 시어머니에 맡겨버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어쩌면 엘리노어가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시어머니의 양육이 더 나을것이라고 여겼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라가 여전히 아들가족과 심지어 손자손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했었는데, 엘리노어의 장남은 훗날 할머니가 "네 엄마는 단지 너를 낳기만 했지. 내가 네게 엄마가 하는것보다 더 엄마같지."라고 말했다고 회상할 정도였습니다.
엘리노어와 프랭클린의 결혼 생활도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부부는 10년간 여섯아이를 낳았는데 사실상 엘리노어는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더불어 자신이 어머니로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리노어와 프랭클린의 결혼생활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는것은 1918년이었습니다. 엘리노어는 남편일 프랭클린이 자신의 개인비서인 루시 머서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프랭클린은 심지어 엘리노어를 떠나서 루시 머서와 함께 지내려했죠. 아마 이 상황은 엘리노어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떠나버린 남편을 보면서 결국 이혼만이 남았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시어머니인 사라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했으며, 또 프랭클린의 정치적 조언자였던 루이 하우 역시 이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좋지 않다고 프랭클린을 설득했기에 결국 부부는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로 합니다.
비록 둘은 이혼하지 않았지만 이후 둘은 부부로써의 삶은 끝장나게 됩니다. 프랭클린은 루시 머서와 만나지 않기로 하고 나서 이혼을 피했지만 훗날 드러난 상황에 따르면 그는 나중에 여전히 루시를 만나게 되죠. 또 다른 여성들과도 관계가 있었죠. 이런 상황은 엘리노어가 자신은 "용서할수는 있지만 잊을수는 없었다"라고 말한처럼 아마도 평생 엘리노어에게 상처가 되는 것일듯합니다.
엘리노어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미련을 정리한 뒤에 자신의 삶을 찾아가게 됩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것을 포기해야했으며, 또한 자녀들은 시어머니의 손안에 있었죠. 이런 상황은 엘리노어가 더이상 자신의 가정에서 위안을 얻을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결국 공적인 삶을 향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공적인 생활을 해야했던 가장 큰 원인이 1921년에 일어나게 됩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