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노어 루즈벨트 : (6) 남편의 병과 공적 생활
엘리노어가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있을때 엘리노어는 물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삶에 가장 큰 시련이 시작됩니다. 1921년 39살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갑자기 병을 앓게 됩니다. 그는 갑작스럽게 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이후 다리에 마비증상이 왔고 점차 몸 전체로 마비가 시작되었으며 방광에 이상이 생기게 됩니다.이때 프랭클린은 거의 죽을뻔하는데 엘리노어는 이런 남편 곁에서 헌신적으로 간호합니다. 프랭클린의 의사중 한명은 엘리노어의 헌신이 프랭클린의 목숨을 구한것이라고 이야기할정도였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양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심각한 타격이었습니다. 당대 장애를 가진것, 특히 정치인이 장애를 가진것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전도 유망한 정치가였으며 이것은 루즈벨트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계속 정치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프랭클린의 어머니인 사라는 아들이 이제 정계에서 은퇴하고 차라리 건강에 집중하길 바랬었습니다. 사실 건강한 사람도 정치가가 되는 것은 힘든데 장애를 가진 아들이 더 힘들것은 뻔했을 것이기에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또 아들을 잃을뻔한 어머니에게 아들의 건강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었을 것이죠. 하지만 엘리노어는 물론 프랭클린의 정치적 조언자들은 그에게 정치를 계속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되죠.
결국 프랭클린은 정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장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가져오게 될것이었기에 그는 재활훈련을 집중적으로 해야했습니다. 대중앞에서는 휠체어를 탄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했으며 적어도 목발이라도 짚고 나타나거나 간단한 동선은 목발없이 간단한 구조물에 기대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줬었죠. 이를 위해서 아마 그는 엄청난 재활훈련을 해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채울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었죠. 그리고 프랭클린의 아내인 엘리노어가 대중앞에 나서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엘리노어의 공적 생활 시작은 많은 의미에서 엘리노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남편의 장애때문에 전면에 나서야할수 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살면서 삶을 간섭하는 시어머니나 잘나가는 정치가 남편이기에 그의 정치적 경력을 위해서 남편의 외도마저 용서해야했던 상황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남편의 정치적 업적에 대해서 그녀의 역할은 평범한 정치가의 아내 정도로 인식되었었지만 이후에는 남편의 적극적인 정치적 동료라는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이것은 힘든 시집살이나 실망스러웠던 남편과의 결혼생활과 외도에서 그녀가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함께해야하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며 남편의 성취가 곧 그녀 자신의 성취와 크게 다를바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공적 생활은 엘리노어가 스스로를 단순한 "루즈벨트 부인"이 아니라 이제 "엘리노어 루즈벨트"라는 이름으로 나서고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