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노어 루즈벨트 (7)영부인이 되기전 까지 정치생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정치가로써 잘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민주당원이었으며 192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 부통령후보가 되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1921년 치명적인 병을 앓게 되었고 장애를 얻은 뒤로는 정치활동에 제약을 받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엘리노어가 대중앞에 나서게 되죠.
아마 엘리노어의 정치 활동 시작은 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혼전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다고는 하지만 결혼후 정치가의 아내로 내조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줬었기에 결혼 20년만에 자신이 대중앞에 나서는것은 어색할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백부가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였을뿐 아니라 친정의 친척들 모두가 공화당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민주당원으로 그녀가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친척들과 마찰을 빚을수 있는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엘리노어의 초반 정치 활동은 프랭클린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조언자였던 루이 하우가 조언을 했습니다. 루이 하우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기에 아마 엘리노어의 정치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1920년대 엘리노어는 여성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여성 노동 환경 개선과 아동노동금지등에 대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기반으로 엘리노어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남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물론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엘리노어는 남편과 가족과 떨어져서 자신만의 정치 그룹을 형성하게 됩니다. 주로 엘리노어와 함게 여성 노동운동등을 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죠. 특히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자금을 모으기 위해 독특한 체제를 구축하기도 합니다. 엘리노어는 자신의 정치적 동료들과 함께 Val-Kill 산업이라는 곳을 만들게 됩니다. 발킬은 엘리노어가 주로 머물던 집중 하나로 이곳을 중심으로 이 지역 농가들이 수익을 좀더 낼수 있게 다양한 수공업품등을 소규모로 만들어서 파는 곳으로 일종의 생협같은 조직이라고 볼수 있을듯합니다. 물론 이것은 엘리노어와 그녀의 친구들의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엘리노어가 매우 애착을 가지는 곳이되었으며 훗날 남편이 죽은뒤 엘리노어는 발킬에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엘리노어의 정치 활동이 모두에게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시어머니인 사라는 며느리가 아들이 아닌 밖으로 더 집중하는것을 그다지 반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엘리노어는 시어머니의 영향력아래서 벗어난 상황이었죠.
사실 시어머니보다 엘리노어에게 더 타격이었던것은 바로 친정 식구들과의 관계였을 것입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를 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1924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엘리노어의 사촌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가 나왔습니다. 주지사 선거에서 당연히 엘리노어나 프랭클린은 모두 민주당후보를 지지했었으며 곧 이것은 치열한 공방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는 아버지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정치적 후계자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었으며, 민주당원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나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루즈벨트"라는 이름으로 이것을 가로채려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둘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욱더 그런생각을 했을 것이기도 합니다. 이때문에 아마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감정이 더 격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는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이것은 엘리노어의 친가쪽 사촌들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나 앨리스 루즈벨트는 물론 어린시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줬던 고모 애나 루즈벨트와도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는 엘리노어나 프랭클린에게 완전히 등을 돌렷으며 늘 정치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192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이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하게됩니다. 물론 그의 곁에는 이제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아내 엘리노어가 있었죠. 그리고 1928년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뉴욕주지사로 당선이됩니다. 사실 크게 이긴것은 아니었고 가까스로 승리한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중 하나였습니다. 뉴욕주지사로써 그는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올라서는 것이었죠.
뉴욕주지사로써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활동을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었을때 상황이 금방 진정될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후버 대통령등의 다른 정치가들과는 달리 그는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서 공격적으로 상황을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정책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게되죠. 이때 엘리노어는 주지사부인이자 남편의 정치적 파트너로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더 확고히 했습니다. 주지사의 아내로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의무를 수행했을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의제등에 대해서도 주장했었죠. 아마도 이것은 이제 엘리노어가 단순히 "루즈벨트 부인"이 아닌 진정한 정치가 엘리노어 루즈벨트라는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932년 선거에 엘리노어의 남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후버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1933년 제 32대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노어는 미국의 대통령 부인인 first lady가 됩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