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나바라의 여왕 후아나 3세
나바라는 팜플로나를 중심으로 바스크족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오래도록 이베리아 반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었지만, 점차 영향력이 약화 되었으며 프랑스 쪽 가문들이 지속적으로 나바라 왕위를 얻게 되면서 프랑스의 국왕의 영향력이 점차 더 커지게 되었으며 프랑스 왕가와 자주 통혼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16세기가 되면서 나바라는 영토가 매우 축소되게 됩니다. 내부갈등은 물론 에스파냐를 형성하게 되는 아라곤과 카스티야의 위협 때문이기도 했죠. 이때문에 심지어 수도였던 팜플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상당부분은 왕국에서 분리되어서 에스파냐로 합병되게 될 정도였습니다.
알브레 가문 출신으로 잔 달브레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나바라의 여왕 후아나 3세는 나바라의 국왕 엔리케2세와 그의 아내인 마르거리트 당굴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약한 세력이 되어버린 나바라의 국왕이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마르거리트 당굴렘은 프랑스의 국왕이 되는 프랑수아 1세의 누나이기도 했습니다.
후아나의 외삼촌인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는 누나와 매우 사이가 좋았었는데, 이때문에 조카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 성대하게 축하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정치적 의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카인 후아나를 프랑스 궁정에서 자라도록 했었죠. 프랑수아 1세는 르네상스기의 중요한 후원자중 한명이었으며 이런 그는 당연히 조카의 교육에 엄청 신경쓰게 됩니다. 그래서 후아나는 매우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합니다.
교육을 잘 받았던 후아나는 아마도 나바라의 왕위계승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듯합니다. 그때문에 그녀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프랑스 국왕인 외삼촌 프랑수아 1세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대하기도 합니다.
프랑수아 1세는 후아나를 윌리히-클레브스-베르크의 빌헬름과 결혼시키려합니다. 빌헬름의 누이였던 안나(앤)은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와 결혼했었죠. 이것은 신교간의 세력을 강화시켜서 갈등을 빚던 합스부르크 가문을 견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같은 가톨릭 국가이긴 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숙적이었기에 합스부르크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서 조카인 후아나를 빌헬름과 결혼시킨것이었죠. 후아나는 나바라의 상속녀였기에 그녀의 남편은 나바라의 국왕이 될수 있었죠.
후아나는 외삼촌의 이런 결혼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그녀는 빌헬름과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외삼촌이 결혼하라고 했을 때 거부했으며 심지어 결혼식장에도 억지로 끌려가다시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결혼서명을 할때조차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모두에게 껄끄러운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4년후 빌헬름은 편을 바꿔서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황제였던 카를 5세를 지지했으며, 이것은 후아나가 그와의 결혼을 무효화 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