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부인도 시집살이는 피할수 없는....

가벼운 역사이야기 :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시어머니 사라 루즈벨트

by 엘아라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중 한명이라고 알려진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먼 친척이었던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1902년 사랑에 빠졌으며 오랜 약혼기간끝에 1905년 결혼하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약혼했던 것은 그의 어머니 사라 때문이었는데 사라는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했기 때문입니다.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결혼전 사라 드라노라는 이름이었던 사라 루즈벨트는 외아들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매우 헌신적인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당대 많은 부유한 상류층 여성들과 달리 아들의 양육과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으며 아들이 잘나가는 것을 매우 뿌듯하게 여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를 위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역시 최선을 다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물론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학교에서 잘나간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뭐....)


아들인 프랭클린과 함께 있는 사라 루즈벨트


이때문에 아들이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사라는 아들의 결혼에 대해서 애매한 입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을 독점하고 싶은 많은 어머니들처럼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넣은 아들이 결혼하려하는 경우는 더 할것입니다. 이때문에 사라는 엘리노어를 싫어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특히 아들이 엘리노어와 약혼한 기간동안 둘을 갈라놓으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라와 함께 있는 엘리노어와 프랭클린


결혼후, 엘리노어와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시어머니인 사라와 함께 살게 됩니다. 정확히는 한집에 산것은 아니었지만 사라는 아들 부부의 집 바로 옆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는 늘 아들집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아들의 집안일에 관여하게 되죠. 문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어머니에게 대단히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내보다는 어머니의 편을 드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사라는 어린 부부에게 자신이 있어야한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며 손자 손녀들이 태어났을때 역시 자신이 아이들을 돌봐야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게다가 엘리노어는 이런 시어머니의 역할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양육을 시어머니에게 맡깁니다. 엘리노어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장남은 훗날 할머니가 늘 "네 엄마는 너를 낳기만 했지 내가 네 엄마나 마찬가지야"라고 말했다고 이야기할정도였습니다.


아들,손자,손녀들과 함께 있는 사라


아마 이런 상황은 엘리노어와 사라의 관계를 그다지 편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독립적 성격이었던 엘리노어에게 사라라는 시어머니는 엄청나게 부담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특히 불행한 어린시절을 지냈던 엘리노어에게 시어머니의 간섭은 어쩌면 어린시절 아름답지 못한 외모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며 상처를 줬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을수 있을 수도 있으며, 또 어린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엘리노어가 스스로 어머니로써의 역할에 소극적이게 만들었을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사라가 며느리에게 아주 경우없이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엘리노어에게는 여전히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엘리노어가 시어머니와 따로 살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서 백악관으로 이사가면서였다고 합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리고 아내인 엘리노어와 어머니인 사라, 이때도 여전히 옆집에서 살고 있을때였습니다. 다음해인 1933년에 이사갑니다. 백악관으로...-0-;;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례를 할려면 이정도는 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