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돌아간 것이 신기함

가벼운 역사 이야기 : 도대체 섭정이 안필요한때가 언제였던거야!

by 엘아라
스튜어트 가문의 문장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가는 1371년 로버트 스튜어트가 외삼촌인 데이비드 2세가 후계자 없이 죽고 난뒤 로버트2세로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 왕가입니다. 그리고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한 뒤 가장 가까운 혈족이었던 제임스 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잉글랜드 왕위도 얻게 되죠.


로버트 2세와 그의 왕비


잉글랜드 왕위를 얻기전 스튜어트 왕가는 스코틀랜드에서 두명의 로버트(로버트2세와 그의 아들인 로버트 3세)와 여섯명의 제임스(로버트 3세의 아들인 제임스 1세부터 계속 자손들이 제임스라는 왕명으로 즉위) 그리고 한명의 메리가 국왕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섯명의 제임스 국왕들중 다섯명이 미성년으로 국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메리 여왕도 미성년으로 국왕이 되었습니다.


로버트 3세의 아들이었던 제임스 1세는 로버트 3세의 늦둥이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뒤 실각했으며 권력은 로버트 3세의 동생인 파이프백작(후에 알바니공작)로버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로버트 3세의 아들이자 제임스 1세의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인 데이비드는 숙부와의 권력싸움에서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하죠. 이에 1406년 로버트 3세의 측근들을 유일하게 남은 미성년인 제임스 1세를 프랑스로 피신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도리어 숙적인 잉글랜드에 포로가 되죠. 제임스 1세가 포로로 잡힌 직후 그의 아버지인 로버트 3세가 사망합니다.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제임스 1세는 미성년에다가 잉글랜드에 포로로 있었기에 스코틀랜드는 물론 섭정체제를 유지하면서 관리됩니다. 제임스 1세는 무려 18년간 잉글랜드에 있다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국왕이됩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스코틀랜드의 권력을 장악했던 알바니 공작과 그 일파를 처리하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


제임스 1세는 1437년 암살당하게 됩니다. 왕위를 노리던 애솔백작 월터 스튜어트를 중심으로 암살음모가 일어났었죠. 제임스 1세의 아내인 조앤 보퍼트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도망쳤으며 이후 남편의 지지자들을 모아서 남편을 죽인 이들에게 복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1세의 아들인 제임스 2세는 겨우 7살이 안된 나이로 국왕이 됩니다. 당연히 제임스 2세는 미성년자였기에 섭정들이 나라를 통치하게 되죠. 제임스 2세는 성인이 될무렵 이전의 섭정으로 권력을 누리던 더글라스 백작 가문과 대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임스 2세는 더글라스 백작을 숙청했었죠.


제임스 2세


내정을 어느정도 장악한뒤 제임스 2세는 숙적인 잉글랜드와 전투를 시작합니다. 이전에 뺏긴록스버러성을 뺏기 위해 1460년 포위공격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대포 근처에 제임스 2세가 있을때 대포가 폭발했고 이 사고로 제임스 2세가 사망하죠.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3세 역시 미성년자로 섭정단들이 그가 성인이 될때까지 통치하게 됩니다.


제임스 3세는 스코틀랜드에서 매우 인기가 없는 왕이었으며, 반면 그의 아내와 장남인 제임스는 제임스 3세에 비해서 인기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제임스 3세가 아들을 견제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부자간의 불화는 내전으로까지 발전합니다. 이 내전으로 제임스 3세가 사망하지만, 그의 아들인 제임스 4세는 성년으로 섭정은 필요없었습니다.


제임스 3세


제임스 4세는 아버지와 달리 매우 스코틀랜드 내에서 인기있는 국왕이었습니다. 내정은 물론 외교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었죠. 하지만 복잡한 외교관계 때문에 결국 잉글랜드와 전쟁을 해야했고, 1513년 전투중 전사했었습니다. 제임스 4세가 사망했을때 그의 아들인 제임스 5세는 겨우 한살이었습니다. 당연히 섭정이 필요했었죠.


제임스 5세는 어린시절 여러 섭정들이 권력을 얻으려했습니다. 그의 친척들은 물론 권신들까지 있었죠. 특히 제임스 5세의 새아버지였던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라스는 자신의 의붓아들인 제임스 5세를 성인으로 주장해놓고는 그를 거의 감금하다시피해서 자신이 권력을 장악했었습니다. 제임스 5세는 간신히 그의 손에서 벗어나서 왕권을 되찾고 앵거스 백작 가족을 추방할수 있었습니다.

제임스 5세는 프랑스와 동맹을 굳건히 했으며 잉글랜드와의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결국 1542년 잉글랜드와의 전투후에 사망하게 됩니다.그가 죽기 6일전 제임스 5세의 아내인 마리 드 기즈는 딸을 낳았습니다. 이 딸이 바로 메리였죠.


제임스 5세




메리는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태어난지 6일만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어린시절 당연히 섭정단들이 나라를 꾸려갔죠. 게다가 잉글랜드는 지속적으로 스코틀랜드를 압박했는데 특히 헨리 8세는 메리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켜서 스코틀랜드를 차지하길 바랬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여섯살 무렵 메리 여왕은 프랑스의 도팽과 약혼하고 프랑스로 건너가게되죠. 메리는 프랑스 궁정에서 자랐고 남편 프랑수아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프랑스 왕비가 됩니다만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없이 남편이 죽고나서 프랑스 궁정에서 처지가 애매해졌고 결국 스코틀랜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온뒤 머나먼 친척이었던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아들인 제임스를 낳죠. 하지만 아들이 한살이 되기전 그녀는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남편 단리경이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그가 살해당했으며 그 주범이 바로 여왕의 총신중 한명인 보스웰 백작이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1567년 보스웰 백작은 여왕을 납치했고, 여왕은 명예를 위해서 그와 결혼해야한다고 주장하죠. 이것은 메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으며 결국 메리는 잉글랜드로 망명했으며 보스웰 백작은 북유럽으로 망명해야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메리 스튜어트


1567년 메리 여왕이 추방되자 그녀의 아들인 제임스가 겨우 1살의 나이로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6세가 됩니다. 물론 당연히 섭정단이 필요했고 또 섭정단이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제임스 6세는 나름 정치적으로 노련한 인물이었기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었다고 합니다. 물론 후에 잉글랜드의 왕위를 얻고 나서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스튜어트 왕가가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는 동안 대부분의 국왕은 섭정단이 필요했었습니다.이것은 사실 왕권을 약화시키는 것이었기에 후에 이 권신들과 국왕과의 대립이 필수적으로 일어났었죠. 어쨌든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참 특이하고 이와중에 나름 나라가 잘 굴러갔다는 것이 솔직히 전혀다른 정치적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사는 저에게는 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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