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이야기 :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와 그의 아내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그녀에게는 언니인 알렉산드라가 있었지만 알렉산드라는 어린시절 죽었으며 마리야가 태어난 시점에서 그녀는 황제의 유일한 딸이었습니다. 위로 네명의 오빠들이 있었고 밑으로는 두명의 남동생들이 있었던 아들 많은 집안의 고명딸이기에 무척이나 사랑받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인 황제가 엄청나게 예뻐했기에 러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리야 여대공을 떠받들어 주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야의 어린시절 부모는 늘 다정했으며 황제는 아내인 황후와 자주 함께 여행을 다니는 다정한 아버지였습니다. 아마도 마리야는 어린시절 뭐든지 다 할수 있는 것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즐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행복은 큰오빠인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죽으면서 서서히 무너지게 됩니다. 니콜라이 대공의 죽음은 마리야의 부모에게 큰 충격이었는데 부부는 둘다에게 의지가 되던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하려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황후는 종교에 더욱더 의지했었으며, 아들을 잃은 허전함을 어쩌지 못한 황제는 아내가 아닌 다른 새로운 사랑에게서 위안을 받게 되죠.
결국 황제와 황후는 그냥 부부이긴했지만 실제로 부부는 아닌 상황이 되는 것이죠. 게다가 황후는 자주 아팠기에 황제는 아예 정부와 함께 지내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아마 마리야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린시절의 행복했던 가족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정부와 행복한 아버지와 슬픔을 신앙심으로 견디며 점점 허약해지던 어머니가 있었죠. 또 큰오빠의 죽음으로 후계자 문제도 일어나서 오빠들중 누굴 후계자로 삼아야하느니 마느니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죠.
이런 상황은 아마 마리야가 멀고먼 외국의 왕자님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 상대는 바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아들인 앨프러드 왕자였습니다. 해군이었던 앨프러드는 세계 여러곳을 여행했었으며 마리야는 이런 앨프러드와 만나서 새롭고 신기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미를 느꼈을 것입니다. 둘은 음악에 대한 관심사도 깊었으며 이런 모든 것은 마리야가 이제 우울한 집을 떠나서 멀고먼 새로운 곳에서 왕자님과 행복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가 부모는 이 결혼에 대해서 결사반대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대놓고 러시아를 싫어했었고(..--;;미혼일때 알렉산드르 2세랑 밤새도록 춤추시면서 노셨던것은 잊으셨나봐요.) 황제 부부는 러시아와 너무나 관습이 다른 영국에서 딸이 힘들게 살것을 우려해서 역시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마리야와 앨프러드는 결혼을 승락받으며 1874년 결혼합니다.
마리야가 결혼전 어떤 꿈을 꿨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결혼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걱정대로 영국 사교계는 러시아와 너무 달라서 마리야가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과부가 된 까탈스러운 시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으며 은근히 테클거는 미혼인 시누이들도 있었죠.(개인적으로는 루이즈가 제일 까탈스럽게 굴었을듯합니다. -0-;;;) 게다가 남편인 앨프레드는 지적인 남자를 좋아했던 마리야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죠. 게다가 둘은 음악을 제외하고는 공동 관심사가 없었으며 마리야가 시집살이로 힘들때 앨프러드는 해군이라서 바다로 떠나렸습니다. 이것은 마리야에게 남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주는 것이기도 했었죠.
이렇게 마리야는 현실도피로 결혼했지만 그 결혼생활도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사회적 지위와 체면때문에 평생을 참고 살아야했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