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에 그 아들??

가벼운 역사이야기 : 아라곤의 후안 2세와 그의 아들인 페르난도 2세

by 엘아라

아라곤의 후안 2세는 권력욕이 매우 강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카스티야의 인판테(왕자)로 태어났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시절 즉위해서 섭정이 숙부와 사나운 사촌들에게 시달렸던 사촌인 카스티야 국왕에 대해서 대놓고 압력을 가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카스티야에서는 그와 형제들에 대해서 "아라곤의 인판테들"이라고 불렀었습니다.


800px-Ariosto%2C_after_-_John_II_of_Aragon.jpg 아라곤의 후안 2세


그가 아라곤의 인판테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아라곤의 국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후안 2세의 아버지인 페르난도는 카스티야 국왕의 아들이었지만, 외삼촌인 아라곤의 국왕이 죽은뒤 외삼촌의 뒤를 이어서 아라곤의 왕위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페르난도의 아들들을 카스티야에서는 "아라곤의 인판테"라고 불렀던 것이죠.


후안은 형인 알폰소가 있었기에 아라곤의 왕위를 이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는 나바라의 왕위계승자가 도는 블란카와 결혼을 합니다. 아내인 블란카가 왕위에 오르자 아내의 지위를 통해서 나바라의 국왕이 되죠. 그리고 그는 나바라의 국왕으로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운영합니다. 당연히 그의 아내인 블란카는 중세시대 여성들처럼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보다는 남편의 뜻을 따랐었습니다.


Blanca_I_de_Navarra.jpg 나바라의 블란카, 후안2세의 첫번째 아내


그런데, 후안의 아내인 블란카가 죽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후안은 아내인 블란카의 권리로 왕위에 올랐기에 그녀가 죽으면 당연히 왕위는 아들에게 물려줘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후안은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했고 결국 내전을 통해서 아들에게 승리를 거뒀으며 그의 아들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왕위계승을 할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이 아들은 아버지보다 일찍 죽죠. 후안은 형인 알폰소의 뒤를 이어서 아라곤의 국왕이 됩니다. 그는 아라곤의 국왕이었음에도 여전히 나바라의 왕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죠. 특히 후안은 딸인 블란카가 왕위계승을 주장하자 그녀를 억누르고 감금했으며 심지어 그녀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딸인 레오노르는 평생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나바라의 왕위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결국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왕위에 오를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Princep_carles_de_viana.jpg 비아나 공 카를로스, 후안의 아들, 아버지에게 왕위를 뺏기고 결국 아버지보다 미리 죽어서 나바라 왕위를 얻지 못합니다.


이런 후안의 강력한 권력욕은 그의 아들인 페르난도가 물려받게 됩니다. 페르난도는 후안의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나바라 왕위와는 관련이 없었죠. 하지만 후안2세의 유일한 아들로 아라곤의 왕위를 계승할 인물이었죠. 하지만 페르난도는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되죠. 바로 카스티야의 상속녀인 이사벨과 결혼한 것입니다. 이사벨은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었으며 페르난도는 아라곤의 국왕이 되었고 둘은 "가톨릭 공동군주"라는 이름으로 두 나라를 통치했으며 결국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에스파냐라는 거대한 나라를 형성하게 되죠.


Fernando_e_Isabel.jpg 아라곤의 페르난도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 가톨릭 공동 군주


하지만 아들인 후안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아내인 이사벨이 죽으면서 그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됩니다. 카스티야의 왕위는 당연히 이사벨이 사망한뒤 이사벨의 자녀에게 돌아가야했으며 이에 사위와 딸인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의 아들)과 후아나(후아나 라 로카)가 왕위계승을 주장하게 되죠. 당연 페르난도는 이에 반발하게 되고 두 세력은 부딪힐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필리프가 일찍 사망하고 후아나의 통치에 대해서 카스티야 사람들이 불만을 품게 되면서 다시 페르난도가 카스티야도 통치합니다. 물론 외손자들이 있었지만 외손자들은 아직 어렸기에 그가 권력을 잡았었죠.


800px-Volets_du_triptyque_de_Zierikzee.JPG 페르난도의 사위였던 필리프와 딸인 후아나, 펠리페 1세와 후아나 라로카, 필리프는 합스부르크가문출신으로 이 결혼을 통해서합스부르크 가문이 에스파냐와 신대륙 식민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페르난도는 다시 재혼을 합니다. 이 재혼을 통해서 후계자를 얻으려는 것이었죠. 상대는 이복 누나였던 나바라의 레오노르의 손녀였던 나바라의 제르멘이었습니다. 제르멘과 결혼한 이유는 후계자가 될 아들을 얻으려는 것도 있었지만 제르멘을 통해서 나바라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것도 있었습니다.

페르난도는 결국 나바라를 무력으로 점령했으며,나바라는 두개로 나뉘고 페르난도가 점령한쪽은 후에 에스파냐쪽에 합병되다고 합니다.


Germaine_de_Foix1.jpg 제르멘 드 푸아,나바라의 제르메나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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