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카스터 공작 부부
캐서린 드 로애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은 바로 랭카스터 공작인 존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랭카스터의 블랜치입니다. 둘의 행복과 블랜치의 때 이른 죽음은 결국 캐서린이 랭카스터 공작의 정부이자 후에 부인이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랭카스터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곤트의 존은 에드워드 3세와 그의 부인인 필리파의 넷째 아들이자 살아남은 셋째 아들로 에노의 겐트(Ghent)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실 이 때문에 그는 겐트의 존으로 알려져야 했지만 잉글랜드식 표현으로 Ghent가 Gaunt가 되어서 "곤트의 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죠. 그는 평생 자신의 출생지이자 어머니의 고향인 에노를 좋아했으며 이 때문에 그가 캐서린 드 로애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가 캐서린 역시 에노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3살 무렵 이미 아버지로부터 리치먼드 백작 지위를 부여받아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에드워드 3세의 다른 아들들처럼 용감한 기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10살 차이나는 큰형인 에드워드를 매우 잘 따랐다고 합니다.
존이 랭카스터 공작이 된 것은 그의 운이 아니라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랭카스터의 블랜치(블랑쉬) 덕분이었습니다. 블랜치는 랭카스터 공작 헨리의 두 딸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랭카스터 공작 가문은 원래 헨리 3세의 둘째 아들인 에드먼드가 랭카스터 백작이 되면서 시작된 가문으로 에드먼드의 손자인 헨리는 에드워드 3세의 절친이자 충성스러운 신하로 랭카스터 공작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기사였고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인물이었죠. 그에게는 두 딸밖에 없었으며 결국 딸들이 그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아들들을 잉글랜드 상속녀들과 결혼시켜서 지위를 굳건하게 해주려고 했었습니다. 이에 따라 존은 블랜치와 결혼하게 되죠.
블랜치는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귀족 여성으로 초서에 따르면 당대 잉글랜드 여성의 정수라거나 the White Lady라고 불릴정도의 여성이었습니다. 존은 이런 블랜치에게 반했었지만, 처음에는 블랜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존은 블랜치를 아내로 맞게 되었고, 흑사병으로 장인이 죽고, 후에 처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랭카스터 공작령 전체를 블랜치가 상속받게 되면서 에드워드 3세는 아들에게 랭카스터 공작 지위를 부여해줬습니다.
존과 블랜치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는데 결혼 9년간 7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행복한 결혼생활은 블랜치가 막내 아이를 낳은 뒤 아마 산욕열로 추정되는 병으로 1368년 사망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캐서린은 이런 공작 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었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