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이야기 : 대머리왕 샤를은 대머리가 아니었다??
샤를마뉴의 손자로 황제 루도비쿠스 피우스(루이 1세, 루이 르 피우스)의 막내아들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샤를(카롤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가 훗날 "대머리왕"샤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현재 남아있는 샤를이 살아있던 시기의 그에 대한 묘사 대부분이 그를 대머리로 묘사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책이나 인장등에 남아있는 샤를의 모습은 대머리가 아니라 머리카락이 있으며 심지어 많게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샤를은 사실 진짜 대머리는 아니었다!!라는 주장이 제기 됩니다. 그러면 대머리라는 뜻의 그의 별명 Calvus(라틴어로 대머리, 영어로는 the bald)는 어떻게 생긴것일까요?
그것은 아마 연대기 저자들이 훗날 그의 처지를 빗대서 이르는 말로 썼다가 와전이 된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어떤 그의 처지를 빗대서 쓴것이냐구요? 네 바로 영지가 없었던 처지였죠.
후에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이 되는 샤를은 원래 루이 1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만 두번째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루이 1세는 794년경 결혼을 했으며 이 결혼으로 여러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특히 아들이 셋이 있었죠. 그리고 아들들이 성장하면서 제국내 일을 분담시키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817년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루이와그의 궁정은 수도인 아헨에 머물고 있었으며 루이와 그의 신하들은 어느날 나무로 된 회랑을 지나서 교회로 들어가려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회랑 지붕이 붕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다행히 루이는 죽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그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제국의 앞날을 걱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 아들들에게 자신의 영지를 분할해서 상속해주기로 결정합니다.
818년 아내가 죽은 1년뒤, 819년 루이는 젊은 여성과 재혼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유디트였죠. 그리고 유디트는 823년 아들인 샤를을 낳게 됩니다. 이 아들이 태어나자 상속문제가 애매해지게 됩니다. 이미 루이는 전처자식들에게 상속 영지를 다 나눠줘버렸으며 심지어 아들들이 후계자 없이 죽을 경우를 대비한 상속법까지 정해놨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막내아들이 태어나자 그에게는 상속해줄 영지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루이는 당연히 막내아들에게도 영지를 상속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장성한 샤를의 이복형들이 여기에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아버지가 상속법까지 정해놓고 이제와서 다시 막내동생에게 영지를 나눠주려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여겼었죠. 결국 이 문제는 내전으로까지 확대되었고, 훗날 형제들간의 싸움을 통해서 결국 베르됭 조약으로 형제들은 영지를 분할상속에 합의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샤를이 태어났을때 그는 더이상 상속받을 영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연대기 저자들은 이런 그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했는데 그게 와전되어서 "대머리"라는 별명으로 남은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