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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09. 2020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12)

마리 도를레앙, 뷔르템베르크 공작부인 (1813-1839)

마리 도를레앙, 뷔르템베르크 공작부인 Princess Marie of Orléans (1813–1839),빈터할터, 1839년


마리 도를레앙은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의 셋째 아이이자 두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으며 이때문에 예술 교육을 꾸준히 받았고, 튈르리 궁안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만들고 여기에서 조각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등 자신의 예술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마리 도를레앙은 예술가로 활동했을뿐 아니라 열정적으로 다른 일들을 했는데 파티를 즐겼으며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1834년 초 마리 도를레앙의 아버지인 루이 필리프는 마리를 양시칠리쪽으로 시집보내려했었습니다. 마리의 어머니가 양시칠리 가문 출신이었을뿐만 아니라 프랑스 왕위를 두고 루이 필리프와 대립하던 앙리 다르투아의 어머니 역시 양시칠리 가문이었습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루이 필리프는 마리를 양시칠리로 시집보내려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1837년 마리는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와 결혼합니다. 알렉산더의 아버지는 뷔르템베르크 국왕 빌헬름 1세의 숙부였고, 알렉산더의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이모였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정치적으로 매우 유용한 것으로 알렉산더는 뷔르템베르크 국왕, 벨기에 국왕, 영국의 여왕,포르투갈 여왕의 남편과 친척관계였고 이런 관계는 당연히 정치적인 연결고리로 작용할수 있었습니다.


마리의 남편,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 빈터할터,1845년, 앨버트 공이랑 사촌관계라서 그런지 좀 닮은것도 같네요.


결혼 다음해인 1838년 아들 필립을 낳았지만 마리는 폐결핵으로 인해서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결국 1839년 사망했었습니다.


마리의 아들인 필립은 후에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수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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