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Oct 23. 2020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14)

루이 도를레앙, 느무르 공작 (1814-1896)

루이 도를레앙, 느무르 공작, Louis of Orleans, Duke of Nemours (1814-1896), 빈터할터


아버지로부터 느므르 공작 지위를 받아서 일반적으로 느무르공작 루이라고 알려지는 루이 도를레앙은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과 그의 아내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의 넷째아이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많은 왕족들처럼 군인으로 성장했었습니다.


1840년 루이 도를레앙은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의 빅토리아의 결혼하게 됩니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으로 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었으며 어머니는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였습니다.  빅토리아의 오빠는 포르투갈 여왕의 남편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둘의 결혼은 역시 정치적인문제가 강하게 고려된 것으로 루이의 누나인 마리가 빅토리아의 사촌과 결혼한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느무르 공작부인 빅투아르와 함께 있는 빅토리아 여왕, 빈터할터, 1852년


1842년 형인 오를레앙 공작 페르디낭이 죽고 나자, 어린 조카를 위해 섭정이 될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형과 달리 인기가 없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1848년 2월 혁명이후, 느무르 공작은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이동안 프랑스쪽 부르봉 가문을 통합하는데 힘썼다고 합니다. 느무르 공작은 부르봉 가문 출신의 정통 후계자였던 샹보르 백작 앙리 다르투아를 설득해서 자신의 조카였던 파리 백작을 가문의 수장으로 인정받게 하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샹보르 백작은 후손이 없었고, 프랑스에서 부르봉 적통이 끊어졌기에 다음으로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는 오를레앙 가문의 수장인 파리 백작을 인정할만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문제는 에스파냐 부르봉 가문이 있어서 더 복잡해집니다.)


어머니 오를레앙 공작 부인 엘렌과 함께 있는 어린 파리 백작, 빈터할터,1839년


느무르 공작은 두 아들과 두딸을 뒀는데 그중 장남인 외 백작 가스통은 브라질의 황제 페드루 2세의 장녀이자 후계자였던 인판타 이사벨과 결혼했었습니다.

둘째 아들인 알랑송 공작 페르디낭 필리프는 오스트리아의 시씨황후의 여동생이었던 바이에른 공작 영애 조피와 결혼했었습니다. 조피의 장례식때 벨기에의 알베르 1세와 그의 아내가 되는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가 만난이야기는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