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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0. 2020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18)

프랑수아 도를레앙, 주앵빌 공

François d'Orléans, prince de Joinville (14 August 1818 – 16 June 1900),빈터할터 1843년


주앵빌 공인 프랑수아 도를레앙은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해군으로 복무했었는데 특히 나폴레옹의 유해를 세인트헬레나에서 옮길때 그가 캡틴으로 있던 배로 옮긴것으로 유명합니다.


프랑수아 도를레앙은 1838년 처음으로 브라질의 황제 페드루 2세의 초대로 브라질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페드루 2세의 여동생이었던 프란시스카를 소개받게 됩니다. 이후 나폴레옹의 유해를 운구할때 잠시 브라질에 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843년 리우데자네이로에서 브라질의 인판타 프란시스카와 결혼하게 되죠. 인판타 프란시스카는 결혼하면서 브라질의 조인빌리 Joinville 지역을 혼수로 가지고 갔으며 이때문에 이들 부부는 프랑스식으로 주앵빌 공부부로 알려지게 됩니다.


프란시스카 데 브라간사, 빈터할터 1844년


1848년 2월 혁명이후, 프랑수아 역시 가족들과 함께 망명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수입은 아내가 시집올때 가지고 온 조인빌리 지역만이 남게 되죠. 이 지역에 독일어권 이민자들이 많았는데 주앵빌 공 부부는 이 지역의 사용에 대해서 승인하면서 대신 경제적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는데 열성적이었는데, 이를테면 프랑스로 가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려했었다고합니다. 또 후에 나폴레옹 3세 말기의 전투에 프랑스측으로 참전하려했지만 거절당했고 신분을 속이고 참전하기도 했지만 결국 프랑스에서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71년 그는 선거에 당선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귀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었고 더 심해졌기에 1876년 사임했습니다.


이후 부부는 파리에서 살다가 사망했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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