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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7. 2020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19)

프란시스카 데 브라간사, 주앵빌 여공

프란시스카 데 브라간사, 주앵빌 여공Dona Francisca (2 August 1824 – 27 March 1898), 빈터할터,1846년


프란시스카 데 브라간사는 브라질의 황제 페드루 1세(포르투갈의 페드루 4세)와 그의 첫번째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 여대공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페드루 1세는 자신의 딸들 이름을 모두 브라질의 지명에서 따왔는데, 프란시스카라는 이름은 브라질에서 아마존 강과 더불어 중요한 강으로 여겨졌던 상프랑시스쿠 강에서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2살때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이후 1829년에 새어머니가 왔지만 아버지인 페드루 1세는 1831년 브라질 황위를 아들인 페드루에게 물려주고 브라질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프란시스카와 언니들은 브라질에 머물렀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녀들이 페드루의 뒤를 이어 브라질 황위를 이어갈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드루 2세와 그의 누나들은 부모없이 브라질에 남았기에 서로 의지하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두 누나인 지누아리아와 프란시스카와 함께 있는 브라질의 페드루 2세


프란시스카는 1843년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의 아들이었던 프랑수아 도를레앙과 결혼합니다. 이때 그녀는 조인빌리 지역을 물려받았으며 이때문에 주앵빌 여공이라고 불리게 되죠.


프랑수아 도를레앙, 빈터할터 1843년


프랑스로 간 프란시스카는 궁정에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져있었으며, 브라질 출신의 여러 귀족들과 교류했었습니다만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난뒤 망명해야했었고 제2재정이 성립되어서야 돌아올수 있었다고 합니다.


프란시스카 데 브라간사, 빈터할터 1844년



프란시스카는 프랑수아 도를레앙과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두 아이만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딸인 프랑수아즈 도를레앙은 후에 사촌인 샤르트르 공작인 로베르 도를레앙과 결혼했으며 둘의 후손은 현재 오를레앙 가문의 수장이라고 합니다.

아들인 피에르는 아버지처럼 해군이 되고 싶어했는데, 이것은 그의 외삼촌인 페드루 2세가 사윗감을 찾을때 그가 사촌과의 결혼을 거절하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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