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엘아라 Nov 23. 2020

사촌이라도 숙적가문은 결국은 싸우게 되는군

가벼운 역사이야기 :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하인리히 데어 뢰베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고 힘들게 작센 공작령을 지켰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해가면서 자신의 다른 영지인 바이에른 공작령등의 상속 역시 주장하게 되죠.


하인리히 데어 뢰베, 사자공 하인리히


게다가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의 분쟁은 여전했었는데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어렸지만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성인이었으며 이들은 가문의 영지들이 다른 가문에 뺏긴것에 대해서 다시 수복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물론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국왕 콘라트 3세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되는데 특히 그의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하인리히 베렌가르(...--;;하인리히들이 너무 많아요.)가 벨프 가문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던 것은 큰 타격이었죠.


콘라트 3세는 이전에 아들인 하인리히 베렌가르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해놨었습니다만, 그가 죽자 후계자 문제가 애매해지게 됩니다. 콘라트 3세의 다른 아들인 프리드리히는 매우 어렸기에 콘라트 3세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이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콘라트 3세가 죽고난뒤 그의 뒤는 그의 조카로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3세가 잇게 됩니다.


콘라트 3세,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의 국왕, 그의 조카인 프리드리히는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됩니다.


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또는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프리드리히는 어머니가 벨프 가문 출신으로 하인리히 데어 뢰베의 고모였습니다. 결국 둘은 사촌간이 되었기에 프리드리히 1세가 즉위하면서 벨프 가문과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사이는 다시 좋아지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사촌인 황제를 지지했었으며 다른 벨프 가문 사람들도 황제를 지지했었죠. 그리고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 역시 사촌에게 원래 영지를 돌려줬으며 또 이탈리아쪽 영지 역시 벨프 가문의 사람에게 주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1세 이후 하인리히 데어 뢰베의 영지


이렇게 잘 지낼것같았던 사촌들은 결국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의 전쟁에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처음에는 충실히 잠전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영지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했으며 황제의 롬바르디아 원정에 참전을 거절합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는 원정에 실패한뒤 사촌에게 불만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갈등상황은 점차 더 커지게 되죠.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와 하인리히 데어 뢰베


아마도 황제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문과 숙적이었음에도 사촌이었기에 많은 지위를 부여했었는데 이런 사촌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또 하인리히 데어 뢰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당면한 문제가 더 중요함에도 황제인 사촌이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결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사촌인 하인리히 데어 뢰베를 추방하기로 결정했으며 1180년 사촌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작위를 상위군주로써 회수해버리게 됩니다.


이후 벨프 가문과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다시 한번 갈등관계가 되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의 지위를 위해서 재혼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