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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24. 2015

중세의 스캔들 : 캐서린 스윈포드의 삶(6)

레이디 케틀스로프

1381년의 농민반란으로 랭카스터 공작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공작은 비록 잉글랜드에 없어서 무사했지만, 그의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정부인 캐서린까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였었습니다. 또 공작은 늘 자랑스러워했던 사보이 궁이 몽땅 파괴된 것에 과하게 충격받게 되죠. 공작은 이를 신의 계시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는 정부와의 죄악의 삶에서 벗어나 아내에게 돌아가기로 선언합니다.


반란자들과 만나는 리처드 2세



랭카스터 공작이 캐서린 스윈포드와 헤어지게 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일듯합니다.

 하나는 그의 말대로 "회개"를 위한 것이었죠. 공작은 중세 인물이었으며 이런 사건은 그가 아내가 있음에도 다른 여성과 함께 한 죄를 지은 것에 대한 벌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또 하나는 캐서린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듯합니다. 농민반란 당시 랭카스터 공작부인이나 공작의 후계자였던 헨리마저 목숨을 위협당했었습니다.  이 때문에 랭카스터 공작이 캐서린과 헤어짐으로써 그녀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확인시켜서 캐서린을 보호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공작은 캐서린과 헤어지긴 했지만 그녀와의 유대는 계속 이어갑니다. 둘 사이에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공작은 늘 보퍼트 가문 아이들을 신경 썼기에 아이들의 어머니인 캐서린과는 어떻게든 계속 만나거나 연락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죠.


공작과 헤어진 이유가 어떻게든 이제 버림받은 캐서린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녀는 평생 랭카스터 공작 가문의 식솔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랭카스터 공작의 기사였으며 동생인 필리파는 랭카스터 공작부인의 시녀이기도 했었죠. 랭카스터 공작과 헤어짐으로써 캐서린은 공작 가문에서의 지위를 모두 내려 놔야 했으며, 이제 남편의 영지인 케틀스로프로 가서 생활해야 했었죠. 게다가 캐서린은 랭카스터 공작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더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캐서린은 사랑했던 이와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로 만나야만 했기때문이죠.


랭카스터 공작은 공식적으로 캐서린과 헤어져 아내에게 돌아갔지만, 공작부인과의 가정적인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카스티야 왕위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아내와 함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잉글랜드를 떠나 카스티야의 왕위를 되찾으려 했습니다.



카스티야의 공동국왕으로써 랭카스터 공작의 문장




그동안 캐서린은 남편의 영지인 케틀스로프로 돌아가서 이제 장원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한 기록은 부족하지만 아마도 1390년대까지 캐서린은 아들을 대신해서 장원을 관리했을듯합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왕가와 여전히 관계가 있었는데 특히 리처드 2세는 캐서린과 보퍼트 가문의 아이들에게 늘 후한 대접을 해줬습니다. 그는 캐서린에게 가터 훈위를 수여했는데 이것은 왕족이나 고위 귀족 여성들만 수여받던 것으로 아마도 그가 캐서린에게 이 훈위를 수여한 것은 랭카스터 공작의 충성심에 대한 보답이거나 아니면 그가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하는 작업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헤어진지 6년이 되던 1387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캐서린은 가터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그해 동생인 필리파가 사망하죠. 또 랭카스터 공작과 공작부인은 카스티야 왕위를 얻지 못했고 대신 둘의 딸인 캐서린을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자와 결혼시킨 뒤 잉글랜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딸인 조앤과 함께 더비 백작부인인 메리 드 분이 아이를 낳는데 가게 됩니다. 메리 드 분은 랭카스터 공작의 맏며느리였죠. 랭카스터 공작의 맏아들인 헨리는 캐서린에게 늘 호의적이었으며 이 때문에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믿고 의지할 사람으로 캐서린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캐서린은 딸 조앤과 함께 더비 백작부인의 가솔로 다시 한번 랭카스터 가문의 식솔이 됩니다.



메리 드 분



비록 랭카스터 가문의 가솔이 되긴 했지만 캐서린과 랭카스터 공작이 바로 옛날처럼 돌아간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공작은 자신의 서자들에 대해서도 무척 신경 쓰고 있었죠. 장남인 존은 기사가 되려 했으며 이에 랭커스터 공작은 장남인 헨리와 함께 여러 가지 경험을 쌓도록 도와줍니다. 성직자가 되려는 둘째 아들인 헨리를 옥스퍼드에 보내주기도 했고 딸인 조앤을 위해 좋은 혼처를 알아봐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다시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을 가깝게 했을듯합니다. 게다가 랭카스터 공작과 공작부인은 이제 함께 살지 않았었습니다. 둘의 공통적 목적인 카스티야 왕위가 물거품이 된 뒤, 랭카스터 공작부인은 이제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냈으며, 공작이 다른 여인과 함께하더라도 자신의 지위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죠.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1390년대 캐서린은 랭카스터 공작과 다시 만났으며 둘 사이에는 다시 옛 감정이 되살아 났을 거라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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