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의 딸 : 앤 네빌(4)

탄생과 정치적 상황

by 엘아라

앤 네빌의 부모인 리처드 네빌과 앤 드 보챔프는 왕가와 가까운 친인척관계였으며 또 이들은 매우 부유한 인물들이기도 했었습니다. 앤 드 보챔프는 광대한 워릭 백작령을 상속받은 여성이었으며 리처드 네빌은 강력한 네빌 가문 출신이었을뿐만 아니라 그 역시 샐리스버리 백작령의 상속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처드 네빌은 아버지가 죽기전 이미 아내의 권리를 통해서 워릭 백작이 되었으며 이후 그는 "워릭백작"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게 되죠.


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앤의 아버지


앤 네빌은 1456년 워릭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언니인 이사벨이 있었는데 아마도 남성 후계자가 없었기에 워릭 백작은 아들이 태어나길 바랬을수도 있을 듯합니다. 엄청나게 부유하고 또 고위 귀족가문 출신이었던 앤은 태어나면서 좀더 편안한 삶을 누릴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재산과 지위는 당대 많은 여성들처럼 앤의 삶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바탕이 됩니다.


앤이 태어나기 1년전인 1455년 잉글랜드에서는 훗날 "장미전쟁"이라고 불리게 될 내전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미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사실 국왕 헨리 6세의 정신적 상태가 안 좋아진것이었습니다. 헨리 6세는 통치가 불가능할만큼 상태가 나빠졌는데 더우기 기존의 헨리 6세의 섭정들 역시 모두 늙어서 사망하면서 권력 다툼이 더 치열해지면서였습니다.


이 다툼의 중심에는 국왕의 친척이었던 요크 공작 리처드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갈등은 점차 깊어져가게 되는데, 특히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이 결혼한지 한참 뒤에 아들인 에드워드를 낳게 되면서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헨리 6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할경우 왕위를 계승할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였었습니다. 서머셋 공작 역시 권리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요크 공작보다는 딸렸었죠. 하지만 헨리 6세의 아들인 에드워드가 태어나자, 요크 공작 리처드는 왕위를 이어받을 희망이 사라져가게 되죠. 그런데 이때 헨리 6세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했고 이것은 요크 공작이 기회를 잡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은 아들의 권리를 뺏기는 것을 가만히 보려하지 않았으며, 서머셋 공작 역시 왕비를 지지하게 되죠. 이런 갈등은 결국 두 세력이 물리적 충돌을 하게 만들었으며 1455년 5월 22일 세인트 알반에서 전투를 합니다. 이 전투에서 요크 공작 쪽이 승리를 거두었으며 국왕은 요크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랭카스터 가문쪽은 엄청난 사상자를 냈는데 주요 인물들이 죽었는데 서머셋 공작 역시 이 전투에서 전사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헨리 6세의 일부를 묘사한 그림, 1908년, 흰장미로 대변되는 요크 공작파와 붉은 장미로 대변되는 랭카스터 파(서머셋 공작)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요크 가문측은 "국왕을 보호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웠기에 국왕과 왕비 그리고 둘의 아들은 무사할수 있었습니다만, 요크 가문이 핵심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앤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은 요크 공작의 처조카로 요크 공작부인인 시슬리 네빌이 워릭 백작의 고모였죠 물론 워릭 백작의 할머니가 랭카스터 공작의 딸인 조앤 보퍼트로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의 고모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워릭 백작령의 상속을 두고 워릭 백작 리처드는 이미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 갈등을 빚었었습니다. 왜냐면 서머셋 공작의 아내인 엘리노어 드 보챔프는 워릭 백작 리처드의 아내인 앤 드 보챔프의 이복언니로 장녀였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워릭 백작령을 막내딸인 앤 드 보챔프와 그녀의 남편인 리처드드 네빌이 상속받은것에 대해서 당연히 서머셋 공작과 그의 아내는 불만을 품을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워릭 백작이 서머셋 공작이 아닌 요크 공작과 더 긴밀한 관계가 되는 이유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에드먼드 보퍼트, 서머셋 공작,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손자, 헨리 6세의 오촌


앤이 태어난뒤 얼마 되지 않아서 워릭 백작은 칼레의 행정관으로 임명됩니다. 칼레는 프랑스 내 잉글랜드의 중요한 요충지이자 항구로 수출입에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칼레가 아마 잉글랜드로 가는 가장 가까운 항구던가 그랬기에 잉글랜드가 마지막까지 프랑스에서 가지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관할하는 행정관은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죠. 워릭 백작 부부가 칼레로 갈때 아이들을 데려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너무 어렸기에 잉글랜드에 두고 갔을수 있으며, 또는 너무 어렸기에 칼레로 데려갔을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앤도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에 1459년 부모가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올때까지 잉글랜드에 있었는지 프랑스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앤의 어린시절 거주지는 잉글랜드의 미들햄 성이었고 이곳에서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킹메이커의 딸: 앤 네빌(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