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오브 웨일스
잉글랜드 최고 권력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것은 에드워드 4세가 젊은 과부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면서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어머니인 룩셈부르크의 자퀘타는 유럽의 통치 가문이었던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이었으며, 헨리 6세의 숙부의 아내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후 남편의 기사중 한명으로 작위를 가지지도 않았던 리처드 우드빌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었습니다. 이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와 리처드 우드빌의 장녀가 바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이었죠. 많은 요크파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에드워드 4세의 신붓감으로 어울리지않다고 여겼습니다. 권력이나 영지를 가진 중요한 귀족가문 출신도 아니었고 왕위계승권과 연결되는 인물도 아니었으며, 결정적으로 그녀의 친정이나 남편 모두가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이었던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에드워드 4세를 프랑스 국왕의 처제와 결혼시키려고 노력했던 워릭 백작에게 엄청나게 화가나는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왕비가 된뒤 우드빌 가문은 궁정에서 자리잡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대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어서 자신들의 지위를 굳히려 했는데 이것은 기존의 고위 귀족들 눈에는 마치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워릭 백작은 우드빌 가문과 더욱더 마찰을 빚게 됩니다. 또 에드워드 4세는 아마도 너무나 권력이 커진 워릭 백작을 경계하려했었던지 우드빌 가문을 지지했으며 이것은 워릭 백작과 에드워드 4세의 관계를 나빠지게 만듭니다.
특히 워릭 백작은 자신의 장녀인 이사벨을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결혼시키려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에드워드 4세는 반대하게 되죠. 당연히 워릭 백작은 이에대해서 불만을 품었으며 조지 역시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사벨은 워릭 백작의 상속녀였기에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었는데 이런 이사벨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 조지가 당연히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었죠.
결국 워릭 백작은 가족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갔으며 1469년 이사벨과 클라렌스 공작 조지의 결혼식을 치루게 되죠. 그리고 워릭 백작과 클라렌스 공작은 함께 잉글랜드로 가서 에드워드 4세의 지지자들과 전투를 하게 됩니다. 승기를 잡긴했지만 결국 워릭 백작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함께 망명해야했죠.
워릭 백작은 프랑스로 갔으며 망명중이던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과 손을 잡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딸인 앤을 마거릿의 아들인 웨일스 공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결혼시키면서 둘의 동맹을 확정하고 잉글랜드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위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는 비밀리에 형과 화해를 했다고 합니다.
워릭 백작의 기습은 성공했으며, 에드워드 4세는 서둘러 망명했으며 워릭 백작은 헨리 6세를 복위시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는 매제인 부르고뉴 공작의 도움으로 군대를 이끌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워릭 백작은 앙주의 마거릿과 웨일스 공이 군대를 더 데리고 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결국 에드워드 4세와 전투에서 사망하게 되죠. 그리고 뒤늦게 앙주의 마거릿 역시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결국 에드워드 4세가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앤 네빌은 시어머니인 앙주의 마거릿과 남편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왔었습니다. 하지만 튜크스베리 전투 이후 시어머니는 포로가 되었으며 남편은 살해당하게 되죠. 그리고 앤 역시 포로로 잡히게 되죠.
과부가 된 앤의 지위는 애매했었습니다. 앤의 아버지와 남편은 사망했었으며 어머니인 앤 드 보챔프는 성소로 도망쳐서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앤을 보호해줄 남성 친척이 오직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었습니다. 클라렌스 공작 조지는 장인이 자신을 왕위에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장인을 버리고 형에게 돌아갔으며 에드워드 4세는 이런 동생을 용서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와 그의 아내인 이사벨은 무사할수 있었죠. 결국 앤은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형부의 집에서 앤의 삶은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