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1471년 앤의 삶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시아버지,남편을 모두 잃었었죠. 게다가 그녀는 에드워드 4세의 적이었던 랭카스터 가문의 후계자의 아내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앤은 겨우 15살밖에 안된 어린 소녀이기도 했었죠. 그랬기에 앤은 언니와 형부의 집으로 보내졌었으며, 곧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수 있게 됩니다. 앤은 어머니인 앤 드 보챔프보다는 훨씬 더 운이 좋았는데 앤 드 보챔프는 성소에서 나올수 없었으며 살아있었음에도 자신의 재산을 강제로 사위와 딸에게 넘겨야했었죠. 비록 아버지의 샐리스버리 백작령은 국왕에게 뺏기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영지는 다른 것이었기에 워릭 백작령은 두 딸에게 상속되게 되죠.
앤이 사회에 나올수 있다는 것은 곧 앤이 재혼을 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중세에는 남성보호자가 필요했었는데, 여성이 단독으로 재산권리를 행사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앤의 경우는 더 복잡했는데 어쨌든 그녀는 반역자의 아내였으며 이것은 그녀가 워릭 백작령에 대한 공동상속을 주장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앤은 이때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지켜줄 남편이 필요했었죠.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였죠.
리처드와 앤은 어린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으며 아마도 리처드는 앤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가 매우 좋은 결혼 상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앤은 막대한 워릭 백작령의 공동 상속녀였으며 또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죠. 리처드는 국왕 에드워드 4세의 충직한 동생으로 형인 클라렌스 공작과 달리 형에게 늘 충성적이었으며 에드워드 4세는 이런 리처드를 신뢰했었죠. 이것은 리처드가 앤을 보호할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서로 잘 맞는 결혼 상대라는 것을 알았지만 결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리처드의 형이자 앤의 형부였던 클라렌스 공작 조지였습니다.
당연히 조지는 처제의 재혼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면 앤이 결혼하지 않고 지낸다면 앤이 워릭 백작령의 재산에 대한 반을 자신의 지분으로 주장할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앤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앤과 리처드는 결혼하게 됩니다.
재마난 것은 이런 반대 때문에 로맨틱한 전설이 전해져오게 됩니다. 앤의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은 앤을 감금하고 리처드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에 리처드는 앤이 교회 성소로 피신할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며 결국 둘은 결혼할수 있었다는 것이죠. 살제로 1472년 2월 클라렌스 공작은 워릭 백작령에 대한 상속권 상당부분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마지못해서 둘의 결혼을 허락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앤과 리처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스티븐채플에서 결혼했지만, 언제 결혼한지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1472년 4월에 교황의 사면이 내려진것을 보면 아마도 1472년 봄쯤이라고 추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리처드는 결혼후 북부 지방의 행정관으로 가게 되었으며, 앤은 남편과 함께 갔으며 어린시절 함께 자랐던 미들햄 성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