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샤를로트 : 멕시코의 카를로타 황후 (1840-1927)
후에 멕시코의 황후로 카를로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지게 되는 벨기에의 샤를로트는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루이즈 도를레앙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샤를로트의 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었으며, 샤를로트의 어머니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의 딸이었죠. 샤를로트라는 이름은 레오폴 1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웨일스의 샬럿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샤를로트가 10살때 어머니가 죽었으며 얼마후 외가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망명해야했기에 주로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었다고 합니다.
샤를로트는 비록 아름답다고 알려져있지는 않았지만 벨기에 국왕의 외동딸이며 가톨릭 교도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신붓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1857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동생인 막시밀리안 대공과 결혼합니다.
결혼후 샤를로트는 오스트리아 궁정으로 갔으며 동서였던 시씨황후와 라이벌 구도가 됩니다. 궁정에 적응 못했던 시씨 황후와 달리 샤를로트는 궁정에 매우 잘 적응했으며 이때문에 시어머니인 조피 대공비가 매우 흡족해한 며느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샤를로트와 시씨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조피 대공비는 조카였지만 시씨 황후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죠. 아마 이것은 시씨가 샤를로트를 좋지 않게 평가하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샤를로트 역시 시씨 황후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이 아니었는데 시씨가 아름다움에 집착한다고 생각했었으며 게다가 시씨가 샤를로트의 남편인 막시밀리안 대공과 잘 지내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860년대초 나폴렝옹 3세는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멕시코 황제 자리를 제안합니다. 막시밀리안 대공의 형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이에 대해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샤를로트는 이에 대해서 지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막시밀리안은 이 제안을 수락했으며 1864년 막시밀리안과 샤를로트는 멕시코의 막시밀리아노 황제와 카를로타 황후가 되죠.
하지만 멕시코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군에 의지한 황제는 멕시코 내에서 지지받지 못했으며 프랑스 군마저 철수해버리자 멕시코내 막시밀리아노 황제의 입지는 좁아지게 됩니다. 카를로타는 유럽으로 가서 친척들과 유럽의 여러 군주들에게 남편을 돕도록 호소했다고 합니다만, 결국 카를로타의 남편은 멕시코에서 총살당하게 됩니다.
남편이 죽기전 이미 좌절을 겪었던 카를로타는 정신적으로 지쳤으며 편집증 증상이 암살자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이상한 행동들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사는 카를로타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판단했었습니다. 그랬기에 카를로타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알린다면 그녀는 더욱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었고 이때문에 가족들은 카를로타에게 남편의 죽음을 알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카를로타는 남편이 죽은뒤 오스트리아 궁정으로 갔었지만 다시 고향인 벨기에로 돌아가게 됩니다. 후에 1차대전때 독일이 벨기에를 공격했을때, 카를로타가 오스트리아 황제의 제수였기에 카를로타가 살던 곳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에 카를로타의 편집증 증상은 사라졌지만, 자신이 여전히 멕시코의 황후라고 여겼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