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되다.
1483년 앤과 리처드가 미들햄에 있는 동안, 수도 런던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국왕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었죠. 에드워드 4세의 죽음은 그동안 가려져있던 요크 가문 내의 권력투쟁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에드워드 4세에게는 장남인 에드워드와 차남인 리처드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에드워드 4세는 죽으면서 왕위를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하지만 장남인 에드워드는 12살 차남인 리처드는 9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당연히 보호자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호자로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를 지명합니다. 에드워드 4세는 유언장에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를 호국경으로 임명해서 미성년인 아들의 국정을 담당하게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데 에드워드 4세 통치시기 우드빌 가문과 요크 가문의 다른 사람들간에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앤의 아버지인 워릭백작이었죠. 워릭 백작이 죽고 난뒤 우드빌 가문 사람들과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친인척들이 권력의 핵심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클라렌스 공작의 죽음등 역시 이런 갈등이 이어진것으로도 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왕 에드워드 4세의 존재로 갈등이 표면화 되는 것을 억누를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가 죽자, 어린 국왕을 두고 권력다툼이 시작됩니다.
당시 막 아버지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5세는 런던에 있지 않았으며 웨일스의 러들리 성에서 외삼촌인 리버스 백작 앤소니 우드빌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어린 왕을 두고 우드빌 가문 사람들과 국왕의 보호자가 될 글로스터 공작간의 갈등이 시작되죠. 우드빌 가문 사람들은 리처드보다 먼저 국왕을 데려오려했으며, 형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된 글로스터 공작은 서둘러 수도를 향해 왔으며 결국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뺏았으며 리버스 백작과 에드워드 5세의 이부형인 리처드 그레이를 처형해버립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웨스트민스터의 성소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결국 다른 아들인 요크 공작 리처드를 데려오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두 형제는 대관식을 위해서 런던탑으로 가게 됩니다. (당대 런던탑은 감옥이라기 보다는 왕가의 거주지중 하나로, 에드워드 4세가 제일 좋아했던 거주지였다고 합니다.)
이와중에 리처드는 형인 에드워드 4세의 중혼 문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할때쯤 수많은 다른 여성들과도 관계가 있었으며 이중 한명과도 엘리자베스 우드빌처럼 비밀결혼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게 됩니다. 이 결혼 때문에 후에 결혼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중혼으로 결혼이 무효이며 그녀의 자녀들 역시 계승권리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이 논리에 따라 리처드는 잉글랜드의 국왕이 됩니다.
남편이 국왕이 되는 동안 앤은 아마도 런던에 남편곁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들햄 성에 있었지만 국왕의 죽음을 안 뒤에 런던으로 왔으며 곧 리처드가 왕위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됩니다. 이때 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사실상 알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의 왕위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었던간에 남편이 국왕이 되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앤 역시 왕비로써의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했을 것입니다. 앤은 이미 정략결혼으로 웨일스 공과 결혼한 적도 있었죠. 또 아버지가 킹메이커라는 별명의 워릭백작이었기에 적어도 앤은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왕위에 오르면 그 뒤를 이을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인 에드워드였으며, 어머니로써 아들을 위한 마음 역시 무시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1483년 7월 6일 리처드 3세와 앤 네빌은 잉글랜드의 국왕과 왕비로 대관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