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대관식을 올린후 앤은 이제 잉글랜드의 왕비로 살아가게 됩니다. 왕비로써의 앤의 삶은 아마도 당대에 추구하던 이상적인 왕비의 모습을 따르려했을 것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 참여는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습니아. 여성들은 주로 남성들의 조언자나 중재자로 활동하면서 전면에 나서는 것을 피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추구했었습니다. 그리고 앤은 아마도 이런 모습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기록이 많이없으니까요 -0-;;;)
앤의 이런 행동은 앤의 이전의 왕비들인 앙주의 마거릿이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앙주의 마거릿은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거의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서 아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키기 위해서 전장에 나가는 것도 불사한 여성이었죠. 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비가 되고 난뒤 친정 식구들과 친인척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모습으로 묘사되면서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마치 권력을 위해서 전면에 나서는 것처럼 보였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앤의 행동안 당대 리처드 3세가 백성들에게 매우 사랑받던 국왕이 된 이유중 하나일것입니다. 당대 기록들에서는 리처드 3세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국왕은 물론 왕비인 앤도 이상적인 모습을 따르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비로써 앤은 정치에 전면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대신 여러 자선사업이나 교회에 대한 사업등을 했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글로스터 공작부인일때도 남편과 같이 지역 교회에 헌신했기에 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앤은 관례대로 많은 주변 친인척들을 식솔로 받아들였으며 또 후견인들 역시 돌보게 됩니다. 왕비의 식솔이 되는 것은 큰 특권이었으며 앤의 친인척들 역시 앤의 식솔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아마도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만,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행동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아마도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가문은 너무나 한미했기에 기존의 권력자 가문 출신 사람들이 즐비한 궁정에서 벼락부자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었기 때문일듯합니다. 사실 왕비의 궁정에서 식솔로 지내면 좋은 혼처를 얻을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이전 왕비들이나 앤 네빌 같은 경우 이미 권력자 가문이었기에 주변 친인척들이 좋은 혼처를 얻는다해도 "서로 어울린다"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친정인 경우 정말 한미했기에 우드빌 가문과 혼담이 오가는 이유는 오직 왕비때문이라는 인식이 컸을 것입니다.
1483년 버킹엄 공작의 반란 실패는 리처드 3세에게 잉글랜드에서 확고한 지위를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판이 좋았을 뿐 아니라 그의 최대 숙적이었던 랭카스터 가문의 반란을 저지했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앤의 왕비로써의 지위도 더욱더 확고해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아들 미들햄의 에드워드가 왕위계승자인 웨일스 공의 지위에 올랐을때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이제 앤은 왕비였을뿐만 아니라 국왕의 어머니가 될 예정이었죠.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