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커의 딸 : 앤 네빌(11)

마지막

by 엘아라

앤과 리처드 3세에게는 아들 한명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아들은 어려서부터 병약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제 국왕과 왕비가 된 둘은 후계자가 될 아들이 있긴 했지만 병약한 아들때문에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했습니다. 아마 리처드 3세와 앤은 다른 아이를 얻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아이는 이 에드워드 한명 밖에 없었죠.


병약했다고 알려진 미들햄의 에드워드는 1484년 4월 사망합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미 병약했었으며 어린이 사망율이 높았던 중세였기에 에드워드 역시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었을 것이며 이때문에 사망했을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은 리처드 3세와 앤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앤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는데 그녀는 아들이 죽은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은 부부사이에도 문제를 야기시키게 됩니다.


리처드와 앤 그리고 둘의 아들 에드워드


리처드 3세는 이제 후계자가 될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인 앤 역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기에 아이를 기대하기 힘들게 되죠. 이것은 앤에게 치명적이었는데 중세시대 왕비의 가장 큰 의무는 후계자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앤은 아들이 있었지만 이제 그녀의 아들은 없었으며 다른 아이를 낳아야했지만 그것을 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죠. 이것은 아마도 리처드 3세와 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리처드는 국정이 바빴기에 여러곳을 다녀야했지만, 앤은 아팠기에 남편을 따라다닐수 없었고 안그래도 심리적으로 멀어진 부부가 물리적으로도 떨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앤의 불행이 시작되었을때 궁정에는 에드워드 4세의 딸들이 오게 됩니다. 1484년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압박했으며, 어느정도 자란 딸들을 성소에서 나와서 궁정으로 보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이전에 헨리 튜더와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결혼시키려했던것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딸들이 이제 혼처를 찾아야할 시점이었기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차라리 딸들이 궁정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딸들은 당연히 앤이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당대에 매우 아름다웠으며 상냥했던 여성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숙부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궁정에서 리처드와 앤 그리고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 대해서 쑥덕거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앤은 더이상 아이를 얻을수 없을 것 같았으며 무척이나 아팠었죠. 리처드는 후계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엘리자베스는 숙부에게 호의적이었죠. 이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리처드가 아내를 버리거나 죽기를 기다려 아름다운 조카와 재혼하려한다는 소문을 퍼지게 만들었습니다.


요크의 엘리자베스


물론 리처드는 엘리자베스를 아마도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자신의 동맹이 될만한 나라로 시집보내려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리처드 역시 이익이 될만한 신붓감을 찾고 있었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리처드의 계획은 아직 앤이 살아있을때 이루어 진것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외교 관계 때문에 말이 나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궁정의 파다한 소문들 역시 앤은 알고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남편의 행동 역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앤은 죽어가고 있었으며, 아마도 더이상 어떤 것을 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485년 3월 앤은 사망합니다.


앤 네빌, 후대의 그림


앤이 죽었을때 리처드 3세는 매우 상심했고 그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평생을 알고 지냈었으며 10여년을 부부로 살았던 아내의 죽음에 당연히 리처드 3세는 상심했을 것입니다


앤은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묻혔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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