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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19. 2015

헤센 대공 부부의 이혼

빅토리아 여왕은 어떻게 취미생활을 접었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자주 친척들의 결혼문제에 관여하고는 했었습니다. 이를테면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오촌 조카인 페드루 5세가 신붓감을 구하고 있을 때 남편인 앨버트 공과 함께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스테파니를 소개하여주기도 했었습니다. (페드루와 스테파니는 행복했지만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쨌든 여왕은 남편이 죽고 점차 나이가 들가면서 친척들의 혼담에 더 열을 올리게 됩니다. 특히 여왕은 손자 손녀들의 혼담에 어떻게든 끼고 싶어 했는데 그건 여왕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빅토리아 여왕


이를테면 여왕은 외손녀인 모레타(프로이센의 빅토리아)를 잘생긴 바텐베르크의 알렉산더와 엮어주고 싶어 했지만 프로이센 측의 반대로 뜻을 못 이루죠. 또 장손인 에디를 외손녀인 헤센의 알릭스와 엮어주려고 했지만 알릭스는 러시아로 시집 가버리죠. 

하지만 여왕이 실패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공한 사례도 있긴 했는데 문제는 이 성공사례가 결국은 중매하는 여왕의 취미생활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였던 헤센의 에른스트 루드비히(애칭 에르니)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20대 때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젊은 군주가 됩니다. 헤센 대공령을 통치하는 군주인 에른스트 루드비히에게는 아내가 필요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외손자를 자신의 손녀 중 한 명과 엮어주고 싶어 했습니다. 바로 에든버러 공작의 딸이었던 더키라는 애칭의 빅토리아 멜리타였죠. 사실 여왕은 이전에 손자인 웨일스의 조지가 더키의 언니인 마리에게 반해서 결혼하고 싶어 했을 때 그 혼담이 성사되길 바랬었습니다. 하지만 양측 어머니들의 극렬한 반대로 인해서 성사되지 못했던 것을 맘에 두고 었죠. 이 때문에 에든버러 공작의 둘째 딸인 더키는 꼭 에르니와 엮어주기로 결심합니다.


이제 당사자들은 "강압적인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압력을 받게 됩니다. 에르니 쪽에서 보자면, 헤센 대공의 부모는 이미 사망했기에 여왕의 압력을 반대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키 쪽에서는 시댁 쪽 식구들과 엮이는걸 싫어했던 에든버러 공작부인은 반대할만했지만, 에든버러 공작 부인의 어머니가 헤센 대공가문 출신이었고(에른스트 루드비히의 대고모) 또 영국이 아닌 독일 쪽 군주의 아내가 되는 것이기에 공작부인 역시 큰딸때와는 달리 심하게 반대하지 않고 결혼을 찬성합니다.


에르니와 더키의 결혼사진


결국 에르니와 더키는 주변 상황에 휩쓸려서 결혼하게 됩니다. 문제는 둘의 성격이 너무나도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둘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죠. 더키는 자신을 소홀히 하는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었으며, 에르니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아내가 불만이었죠. 그리고 둘은 점차 서로에게 더 불만이 쌓여가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둘의 사이는 더 심각하게 나빠지게 됩니다. 왜냐면 에르니와 더키의 딸인 엘리자베트는 매우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특히 아버지인 에르니가 딸은 너무나도 끔찍이 사랑했었습니다. 문제는 엘리자베트는 외모가 어머니 더키와 거의 똑같았는데 에르니는 더키에 대해서는 그다지 애정 어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딸에 대해서는 세상 모든 것과 바꿀 수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었죠. 이런 상황은 부부가 아이의 애정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는데 아이는 아빠를 더 잘 따랐기에 더키는 더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엄마랑 있는 헤센의 엘리자베트 


아빠랑 있는 헤센의 엘리자베트 


이런 불행한 결혼 생활은 전 유럽 왕가에 소문이 쫘악 퍼지게 됩니다. 둘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들은 빅토리아 여왕은 "둘은 내가 엮어주었다. 내 다시는 중매하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빅토리아 여왕은 취미생활을 접었습니다.



더하기

손자 손녀가 불행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왕은 대공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대공 부부의 딸이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증손녀인 헤센의 엘리자베트 때문이었죠. 여왕은 이 천사 같은 아이를 위해 부모가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대공 부부는 여왕이 죽고 난 뒤 이혼합니다. 둘의 이혼에 대해서 모두가 더키를 비난하는데 더키가 남편을 떠나 이혼을 먼저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혼한다는 것은 왕족들에게는 충격적인 일로 아이들에게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닐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에르니는 결혼생활을 끝낸 것이 모두에게 더 잘된 일이었다고 이야기했으며, 에르니의 누나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헤어지는 것이 둘을 위해 최선이었다"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이혼 후 둘은 각자 재혼했으며 뭐 적당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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