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베르크의 앨리스와 그리스의 안드레아스의 결혼식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바텐베르크의 루이스와 그의 아내인 헤센의 빅토리아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이 제일 예뻐한 외손녀로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빅토리아 여왕과 그 후손들과 자주 만났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모가 남달랐던 앨리스에 대해서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인 빅키는 "이대로 자란다면 유럽에서 제일 예쁜 왕녀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인 버티(에드워드 7세)는 "유럽의 어느 왕위 계승자에게도 (신붓감으로) 손색이 없다"라고 언급할 정도였죠.
하지만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는 1903년 10월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결혼합니다. 둘은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을 위해 왕족들이 모였을 때 처음 만났는데, 대관식이 연기되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졌고, 시간을 때우다가 우연히 눈이 맞았죠. 앨리스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앨리스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결혼을 반대합니다. 그때 겨우 열일곱 살로 나이도 어렸을 뿐만 아니라, 귀천상혼 한 가문 출신의 여성이 통치왕가로 시집 갔을 때 얼마나 힘들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앨리스는 결혼하겠다는 의지를 더욱더 확고히 했고, 아버지 루이스가 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잠시 휴가를 내서 돌아와서 설득했음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빅토리아는 동생인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하소연했는데, 황후는 "그 애가 우리처럼 행복하다면 그만인걸요"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앨리스 공녀의 외가인 다름슈타트에서 열린 결혼식은 1차 대전전에 마지막으로 유럽 왕실 가족들이 대부분 모인 자리였습니다. 신부인 앨리스 공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였으며, 러시아 황후의 조카였죠. 신랑인 안드레아스 왕자는 덴마크 크리스티안 9세의 손자이자 그리스 게오르기오스 1세의 아들이었기에, 러시아 황제의 사촌이었고, 영국 왕비의 조카였습니다.
이 때문에 신랑 신부 측 가족들이 다 모였는데 러시아 황제 부부를 비롯한 신부 이모 가족들이 다 왔으며, 앨리스의 숙모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딸이자 후에 에스파냐 왕비가 되는 에나를 데리고 참석했습니다. 신랑 측도 그리스 왕가 모두와 신랑의 이모인 뷔르템베르크 공작부인과 고모인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가 왔었죠. 에드워드 7세는 오지 못했지만 대신 대리로 테크 공작(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인 팻 메리와 결혼했으며, 에드워드 7세의 사돈)을 보냈었습니다.
왕족들은 작은 도시인 다름슈타트에서 휴가 온 것처럼 즐겁게 보냈다. 의전 등을 생략한 채 소탈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이때 다름슈타트 사람들은 왕족들이 마차를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결혼식은 세 번 치러졌는데, 먼저 시민 예식이 치러졌으며, 신부의 종교인 루터파식으로 한번 치러졌고, 신랑의 종교인 그리스 정교회식으로 또 한번 치러졌습니다. 결혼식 뒤에는 시중 드는 사람들이 없이 하객들만 모여서 피로연을 열었죠. 이 피로연은 무척이나 신났는데, 사적인 자리라도 늘 시중 드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써야했던 왕족들이 그런 시선으로부터 벗어났기에 잠시 자신의 신분을 잊고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들을 했었습니다. 신부의 모부인 독일의 하인리히 왕자는 흥에 겨워서 소리를 질러댔고, 신랑의 형인 게오르기오스 왕자는 신랑의 모자로 이모인 베라 여대공에게 장난을 쳤습니다. 재미난 것은 베라 여대공은 이 장난을 친 사람이 조카가 아니라 하객으로 온 신부 아버지 친가 한 짓이라고 생각해서 모자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으며, 이것을 본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가 사돈을 말리러 갔었죠.
피로연에서 하객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동안 신랑 신부는 마차를 타고 다름슈타트를 돌면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때 피로연에서 이미 만취한 신부 이모부이자 신랑 사촌인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마차를 타고 다름슈타트를 돌고 있던 신랑 신부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됩니다. 매제가 나서는 것을 본 짜르의 처남인 헤센의 대공은 짜르와 함께 동행하죠. 짜르와 대공이 거리에 가서 신랑 신부의 마차를 보려 했는데 군중들의 인파 때문에 뒤쪽으로 밀리게 됩니다. 그러자 러시아 비밀경찰과 헤센의 경찰들이 대공과 짜르를 위해 길을 터줬죠.
술에 취한 자르는 신랑 신부에게 액막이 쌀을 던지는 전통을 시행합니다. 하지만 자르는 쌀을 조금 던지는 대신 부대자루째로 신부에게 던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큰 부대는 아니었던듯하네요. 던질 정도면 말입니다.) 마차에서 이모부의 황당한 선물을 받은 신부는 우아하게 신발을 벗습니다. 그리고 황당한 선물을 한 이모부를 향해 큰소리로 경고를 하죠. 하지만 술에 취한 자르는 이 소리를 듣지 못했고, 신랑 신부의 마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신발에 맞은 짜르가 어안이 벙벙한 채 서있었고, 거리는 숨죽인 웃음소리만 들렸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