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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22. 2015

죽은 아들보다 더 나은 아들은 없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전기 작가인 에드바르드 라진스키는 자신이 쓴 알렉산드르 2세의 전기에서 그를  "the last great tsar"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의 위대한 짜르인 "표트르 대제"이후 마지막으로 개혁을 추구했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가 러시아를 통치하던 시기는 러시아의 모든 사회적 면에서 발전하던 시기였으며 심지어   황제의 바람둥이 기질조차도 "위대한 인물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알렉산드르 2세에게는 여섯 아들이 있었으며 그중 장남이었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인물이었죠. 니콜라이 대공은 매우 총명했으며, 러시아의 황위 계승자로 손색이 없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알렉산드르 2세의 장남,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알렉산드르 2세가 황태자 시절, 어린 장남 니콜라이 대공이 당시 유럽의 공통어였던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고 합니다. 황태자는 (강압적인) 황제 앞에서 아들에게 "네가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으면 외국 대사와 어떻게 말할 것이냐?"라고 이야기하면서 야단쳤죠. 이것은 무서운 할아버지의 권위를 빌어 아들게 프랑스어를 배우게 하려는 속셈이었던듯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에 어린 대공은 "통역관을 쓰면 되죠"라고 대답하면서 끝까지 꺽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알렉산드르 2세는 "그러면 전 유럽이 널 비웃을 거다"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자 어린 대공은 할아버지 앞에서 "그럼 전 유럽에 선전포고를 하겠어요"라고 말함으로써 황제 니콜라이 1세를 기쁘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니콜라이 대공은 프랑스어를 안 배울 수 없었으며 아주 잘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화가 전해지는 황태자는 아버지의 자유주의를 잘 이해했고,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을 이어받을만한 인물로 칭송받았습니다. 그의 가정교사들은 황태자를 "러시아의 구세주"라고 칭송하고 다녔죠. [저는 이것을 "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라고 황태자는 결핵균이 척수에 침투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황태자는 여러 곳을 요양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니스에서 애통해하는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아름다운 약혼녀를 두고 사망합니다.


  

약혼녀인 덴마크의 다우마 공주와 함께 있는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황제의 자랑스러운 장남은 사망했으며, 이제 황제는 남은 다섯 아들들 중에 황위 계승자를 정해야 했습니다. 먼저 황제의 아들들 중 밑에서 두 아들인 파벨 대공과 세르게이 대공은 황위 계승자가 되기에 너무 어렸습니다. 넷째 아들인 알렉세이 대공 역시 나이가 어렸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연상의 가정교사와 사고를 쳤고 그녀와 결혼하기를 계속 주장했었기에 황위 계승자가 되기에는 훗날에도 가망이 없었죠. [러시아는 귀천상혼 하면 계승권을 박탈당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파벨과 세르게이,니콜라이 대공이 죽었을때 파벨은 다섯살, 세르게이는 여덟살이었습니다.



결국 황제는 남은 두 아들인 알렉산드르와 블라디미르 중에서 황태자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황제의 차남인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형인 니콜라이 대공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형과 비슷한 또래였고 비록 성격은 전혀 달랐지만 잘 맞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 대공은 형과 함께 황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그런 교육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 대공은 이른바 "단순 무식한" 로마노프 대공들 중 하나로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군대"밖에 없었죠.  그러나 알렉산드르 대공은 형인 니콜라이 대공을 매우 자랑스러워했으며, 똑똑한 형이 황제가 된다는 것에 매우 기뻐했으며 자신이 골치 아픈 "정치"에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했다고 합니다.


황제의 삼남인 블라디미르는 알렉산드르보다는 똑똑했으며 그는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또 그는 야심이 많은 인물이라고도 알려지게 되는 인물이었죠.


궁정 조신들 모두 황제가 당연 차남이 아닌 삼남을 황태자로 지목할 것으로 기대했었으며 많은 이들이 황제에게 블라디미르 대공이 황태자가 되어아한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중에는 황제의 숙모였던 엘레나 대공비도 포함되었는데 그녀는 황제에게 블라디미르 대공을 황태자로 뽑으라고 간청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가운데 둘중 아래가 알렉산드르 대공, 위가 블라디미르 대공입니다.




하지만 황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황제에게는 죽은 장남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아들은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고만고만한 아들들 중에서 황태자를 뽑아야 했고 너무나 힘든 일이었죠.

결국 황제는 죽은 장남의 선택을 지지했습니다. 니콜라이 대공은 죽기 전 아버지에게 "사샤(알렉산드르 대공의 애칭)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황제는 이것을 장남이 차남에게 황위를 잇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게 되죠. 또 황태자는 죽기 전 미치도록 사랑했던 약혼녀를 동생에게 부탁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역시 제위를 알렉산드르가 이어야 한다는 계시와 마찬가지였죠.


  



알렉산드르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덴마크의 다우마 공주, 약혼사진




모든 이들이 황제에게 블라디미르 대공을 황태자로 결정하라고 이야기했지만 황제는 꿈쩍하지 않았으며, "단순무식"하다고 알려진 둘째 아들인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황태자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됩니다.


  

황태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 1865년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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