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 왕비로써의 삶
영국의 왕비가 된 캐롤라인은 이제 정치적 상징이 됩니다. 캐롤라인은 자신이 정치에 전면에 나설경우 공격의 대상이 될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캐롤라인은 왕비였으며 특히 남편인 조지 2세는 그녀를 신뢰했기에 캐롤라인이 정치에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조지 2세가 하노버에 갔을때 캐롤라인이 섭정으로 일해야했던 것입니다. 이미 캐롤라인과 월폴과의 관계는 잘 알려져있었으며 이것은 월폴과 캐롤라인이 정치적으로 같이 공격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었습니다. 특히 월폴은 국내 재정을 더욱더 확충하기 위해서 소비세법안을 통과시키는데 1733년 만들어진 이 법률에서 세관직원들이 가택수색을 할 권리를 부여하면서 이에 대해서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법안은 결국 철회되었지만 이 법을 제안한 월폴뿐만 아니라 월폴의 후원자인 캐롤라인 왕비에 대해서도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왕비였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공격에 대해서 아마 어쩔수 없는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비록 캐롤라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반면 왕비측 사람들 역시 존재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캐롤라인은 이런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어느정도 선을 유지한다면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정치적으로 능력이 있었던 캐롤라인은 이를 잘 이용했었습니다.
궁정내에서 캐롤라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비록 남편인 국왕이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였지만 캐롤라인은 남편에게 늘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이것은 캐롤라인이 남편의 정부들에 대해서 권위를 갖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캐롤라인은 남편의 정부들에 대해서 다른 왕족 여성들처럼 그냥 눈감아줬었으며 심지어는 남편의 정부를 이용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조지 2세는 자신의 정부였던 헨리에타 하워드에게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췄으며 아내와는 즐겁게만 지냈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남편의 화를 받아내주는 헨리에타 하워드가 유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캐롤라인은 헨리에타 하워드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기까지 했었습니다만, 절대 자신의 신분이 더 높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으며 헨리에타 하워드에게 권위를 내세웠으며 헨리에타 하워드는 복종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헨리에타 하워드는 남편인 찰스 하워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남편을 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기에 조지 2세의 정부로 사는 것을 선택했었습니다. 비록 조지 2세가 헨리에타 하워드와 있을때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거나 캐롤라인이 왕비로 헨리에타 하워드에게 굴욕을 주기도 했었지만 대체적으로 견딜수 있는 정도였었습니다. 특히 찰스 하워드가 조지 1세측 사람이 되었기에 헨리에타 하워드는 대놓고 남편을 떠나 살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후에 조지 1세가 죽고 찰스 하워드가 서퍽 백작이 된뒤 아내를 다시 찾아오려했을때 캐롤라인 왕비가 보호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733년 찰스 하워드가 사망하자 헨리에타 하워드는 이제 더이상 힘든 궁정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왕비에게 더이상 국왕과의 관계가 없기에 자신의 궁정 지위를 사임하겠다고 합니다. 캐롤라인은 헨리에타 하워드가 아쉬웠지만 붙잡을수 없었으며 , 헨리에타 하워드는 1734년 궁정을 떠나서 자신의 집에서 재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조지 2세는 헨리에타 하워드가 떠난뒤 하노버에서 아말리 폰 발모덴이라는 여성을 만났으며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를 자신의 정부로 삼았습니다. 캐롤라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이전처럼 남편의 정부를 받아들였습니다. 게다가 아말리 폰 발모덴은 영국에 있지 않았으며 이때문에 만날일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조지 2세는 영국에 있는 동안은 다른 여성이 없었으며 이것은 캐롤라인과 좀더 가족적 생활을 즐길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정적 행복을 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만 그럴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장남이자 후계자가 되는 프레드릭과의 불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