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 장남과의 갈등
캐롤라인은 1714년 하노버에서 영국으로올때 겨우 7살이었던 장남 프레드릭을 떼어놓고 와야했습니다. 이것은 조지 1세의 명령으로 이루어진것으로 조지 1세는 못마땅한 아들이 손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 또 자신의 집인 하노버를 손자가 지키길 바란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프레드릭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캐롤라인은 언제나 어머니로 자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인이 될때까지 거의 보지 못한 아들이 낯설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지낸 아들보다 품안에 있던 아들인 윌리엄을 더 아끼게 됩니다.
프레드릭은 조지 2세의 장남이었고 왕위계승자였기에 영국에 오는 것이 중요했었으며, 월폴의 줄기찬 설득으로 인해서 조지 1세는 죽기 직전에 손자를 영국으로 데려오는 것을 동의했었습니다. 그리고 조지 1세가 죽지 않았다면 조지 1세가 돌아왔을때 프레드릭 역시 할아버지와 함께 왔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지 1세가 죽으면서 상황은 좀 애매하게 됩니다.
프레드릭은 그나마 자주 만난 할아버지 조지 1세와 좀더 가까웠으며 이것은 아마도 프레드릭이 부모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프레드릭은 어려서 외롭게 자랐고 부모에 대한 감정마저 옅어졌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하노버에서 성인으로 행동해야했으며 이것은 그가 결혼을 통해서 부모로부터 더욱더 독립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프로이센 사촌이었던 빌헬미네에게 마음이 있었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원했었지만 그의 고모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영국과의 결혼을 고려하지 않았었기에 프로이센에서 호의적으로 대접받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조지 2세 부부는 서둘러 아들을 영국으로 부르게 됩니다.
프레드릭은 아버지가 영국의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을 바로 데릴러 오지 않는 것에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1728년 프레드릭은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아마 프레드릭은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부모에 대해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프레드릭은 부모가 자신을 홀대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부모를 만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지 2세 부부 역시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긴했지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아들이었기에 아들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결국 불화로 끝나게 됩니다. 부모자식간에 서로를 거의 알지 못했었으며 이들은 서로에 대해서 실망감을 가지게 됩니다. 프레드릭은 예술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사교성이 좋았습니다만 그에 못지 않게 도박등을 했고 빚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당연히 조지 2세와 캐롤라인 왕비는 못마땅해합니다. 프레드릭은 좀더 무뚝뚝한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 사이에서 처음에는 좋아했었지만 결국 어머니가 자신에 대해서 비난을 하거나 부모가 자신보다 동생인 윌리엄을 더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특히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나빴는데 아마도 동생을 편애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것입니다.
프레드릭은 영국에서 활발한 사교활동을 했으며 이것은 스캔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양다리를 걸친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자 아이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다툼을 하기도 했으며, 또 빚 때문에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기도 하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조지 2세 부부가 장남에게 더욱더 실망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조지 2세와 캐롤라인 왕비는 아들의 신붓감을 서둘러 선택합니다. 선택한 여성은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테로 그녀는 캐롤라인처럼 남편보다 더 똑똑하고 정치적이었지만 남편에게 헌신적인 여성이었습니다. 1736년 아우구스테와 결혼한 프레드릭은 아버지인 조지 2세가 아내인 캐롤라인과 잘 지낸것처럼 아내인 아우구스테와 잘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프레드릭과 부모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